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터넷과 친숙했다. 당선에서 퇴임 이후까지 그는 늘 인터넷과 함께 했다. 나눔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터넷의 근본정신이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건 그의 정치적 신념과 맞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 전 대통령은 네티즌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2002년 12월 18일 선거 하루 전에 당시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후보 단일화 철회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지지층인 20·30대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결집하면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인터넷과 불가분의 관계로 여겨졌다.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에 즈음해 영국 유력지 가디언은 ‘세계 최초로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확정 후 다른 어떤 분야보다 먼저 인터넷기업인에 대해 감사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달, 인터넷 대통령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2002년 12월 27일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인터넷기업상 시상식 및 인터넷기업인의 밤 행사’에 당시 허운나 민주당 의원을 통해 감사 메시지를 전달했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사이트를 개설,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방면의 의견을 담은 글을 올리면서 더욱 인터넷과 가까워졌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사이트에 2008년 2월 29일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2009년 4월 22일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약 14개월 동안 총 21개의 글을 올렸다.
이 가운데 작년 10월 22일 올라온 ‘대북정책,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글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면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사는 세상의 글들은 올 들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주로 회한과 자조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3월 4일 ‘정치하지 마라’나 5일 ‘연속극 끝났는데’ 등의 글이 그 사례다.
잇따른 가족의 소환과 측근의 사법처리를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은 인간적 호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4월 21일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통해 수많은 기자의 눈과 카메라가 자신을 주시하면서 겪는 인간적 고통을 토로했다. 이 글은 무려 12만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인터넷 활동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이튿날 홈페이지를 닫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 속에서 그는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자 국민과의 대화 창구였던 인터넷에 이별을 고한 후 한 달 만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이제 인터넷에는 그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만이 넘실대고 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