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방송이 지방분권 대상인가

[ET단상] 방송이 지방분권 대상인가

 최근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재허가 행정처분 등 인허가 관련 사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종합유선방송사업의 인허가 업무가 지역성이 강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반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합적인 방송정책 수립 집행과 콘텐츠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적 정책과 집행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방송법상 종합유선방송사업 허가에 관해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지역사업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돼 있다.(제12조) 종합유선방송사업 기반이 지역과 관련됐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책 효율성과 경제 활성화에만 신경 쓴 나머지 기본이 되는 방송법의 목적이나 방송사업의 특수성이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법률가로서 이러한 논의가 매우 걱정스럽다.

 방송법에서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이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시청자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방송에 관한 규제는 행정기관에 맡겨지는 것을 피해 왔다.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조차도 정부조직법 제16조 적용이 명시적으로 배제돼 국무총리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도록 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5인의 상임위원 중 3인은 국회에서, 그중에서도 2인은 야당 추천을 받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이렇게 방송통신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해 행정부의 독단을 배제하고 야당의 견제를 명시한 것은 오로지 방송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감안한 것이다. 같은 기관이 감독하고 있는 통신사업에 관해서는 이와 같은 특별 대접이 없었고 필요성이 대두된 적도 없다는 점을 보더라도 방송사업의 특별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종합유선방송사업이 방송법에서 독립해 지방자치단체 판단에 맡겨질 수 있는 사안정도로 생각하는 정부 당국자가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이쯤에서 중앙행정기관에서 전국의 종합유선방송사업 인허가 기준을 잘 제정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그 기준에 따라 인허가를 집행하면 된다는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방송사업 인허가가 단순히 조문에서 정한 기준을 대입하여 심사가 가능하고 그런 방식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면 방송통신위원회 탄생에 그렇게 어려운 협의와 오랜 논의가 필요했을까.

 전국 가구의 과반수가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방송프로그램의 시청을 종합유선방송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종합유선방송은 중요한 방송사업이다. 방송사업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소유와 겸영이 일정한 조건하에서 허용되고 있는 극소수 예외적인 산업분야다. 우리나라는 방송법에 전국의 77개 권역 중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종합유선방송사업에 관한 소유과 겸영이 규제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고 있는 대형 MSO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규제는 더욱 완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소유겸영의 확대추세는 필연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전국적인 차원에서 형평을 기한 규제나 조정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의 실질적인 수입원은 초고속인터넷이다. 이 분야에서도 규제와 조율이 불가피하다. 인터넷 서비스는 유선방송과 같은 송출망을 거쳐 제공되고 디지털유선방송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다른 방송사업자는 물론이고 이동통신사업자와의 신호간섭 문제까지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문제 진단과 해결을 위한 각종 장비와 기술인력을 지방자치단체 모두가 갖추어야 한다면 그야말로 중복과 낭비의 전형이 된다. 현실과 법이 정한 기본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경제논리로 지방분권이 주창되는 것은 문제다.

 류광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KH.RYOO@BaeKim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