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누고 이를 칠정(七情)이라고 부른다. 기쁨·화남·슬픔·생각·갑갑한 슬픔·놀람·공포(喜怒悲思憂驚恐). 이들이 칠정이다. 칠정이 주인이 돼 우리를 헤어나지 못할 때 건강은 급속히 나빠질 수 있다. 반면에 칠정을 왜곡시키거나 억눌러도 병이 된다. 그래서 정당하고 순수한 칠정이 자연스레 생기고 지나가는 것이 올바르고 건강한 과정이다.
칠정 중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본연의 자기로 돌아가 순수함을 찾게 만들고 몸을 맑게 하는 힘이 가장 큰 것이 슬픔(悲)이다. 아무리 악(惡)했던 사람도 깊은 슬픔 앞에선 모든 사욕이 사라지고 오로지 슬픔만 남는다. 그래서 슬픔은 한의학적으로 가을과 같다. 모든 것이 맑아지고 군더더기 없는 가을과 같다.
슬픔의 정화력은 마음뿐 아니라 몸을 치료하는 강력한 힘이 되곤 한다. 반대로 슬픔에 너무 빠져 있게 되면 점차로 극심한 기운의 소모가 일어난다(悲則氣消). 또 순수한 슬픔을 못 느끼는 사람은 착잡함, 찝찝함만을 느낀다. 이것은 오히려 몸을 혼탁하게 하고 병들게 한다.
슬픔은 몸의 기운을 안정시키고 맑게 해서 그동안 차올랐던 찌꺼기들을 걷게 한다. 몸과 마음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슬픔을 느낀다면 있는 그대로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자. 그리고 슬픔을 벗어나자. 그것이 슬픔을 겪음으로 오히려 건강해질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