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전력은 전기·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쉬게 하는 동안 약간의 전력을 소비하게 해 ‘대기(standby)’상태에 놓아두기 위한 전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TV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TV를 꺼도 완전히 끄는 것이 아니고 TV 속 원격 제어(remote control)를 위한 적외선 센서 회로가 여전히 작동하거나 화면의 구동을 빠르게 하기 위해 가열 부분을 예열하고 있다. 이는 작동 시간을 기다리기 싫어하고 편리한 조작을 좋아하는 현대인의 구미에는 맞는 것이지만 TV를 항상 대기상태에 놓아두는 대가로 전력을 소비해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대기전력을 아끼기 위해서는 TV 사용자가 플러그를 뽑으면 되지만, 벽에 있는 리셉터클(receptacle, 흔히 콘센트라고 함)에서 플러그를 빼내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대부분 가정에서는 실현성이 없어 보인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성향에 맞춰 전자제품도 지나치게 편리해진 덕분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제조자가 원(元, master) 스위치를 만들어 소비자가 온오프(on/off)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은데, 이는 대기작동(standby on) 스위치와 혼동이 생겨 생산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TV뿐 아니고, 컴퓨터·형광등·CD플레이어·정수기·전기 솥(전자레인지) 등 거의 모든 가전기기에 대기전력이 사용된다. 이 중 특히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것은 전기밥솥인데 보온 상태에서 50∼100W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밥을 항상 따뜻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전력으로 밥을 먹기 직전에만 따뜻하면 되는데 밥을 다 지은 후에 그 다음 끼니를 먹기까지 긴 시간 동안 아까운 전기 에너지를 계속 낭비하는 것이다.
2007년을 기준으로 할 때, 가구당 연간 대기전력은 306㎾h로 가정의 대기전력에 의한 손실 금액은 연간 5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85만㎾(850㎿)급 원자력 발전소 1기가 발생시키는 엄청난 에너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가정에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에너지가 엄청난 셈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인구 수는 25위며, 경제 규모는 13위다. 단 2008년은 원화 가치의 하락으로 순위가 더 낮아질 것이지만 본질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석유가 전혀 나지 않는다. 석유 수입 금액은 세계 4위고 에너지 소비는 세계 9위다. 정상적으로 따지자면 경제 규모가 13위면 에너지 소비도 13위 부근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한국인의 에너지 씀씀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할 때 국민 1인당 전기 에너지 소비량은 일본의 약 95% 수준으로, 국민 1인당 소득이 일본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도 최고 품질의 에너지 즉 전기를 거의 동일하게 사용한다는 큰 문제를 안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늦었지만 대기전력에 관심을 갖고 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배경이다. 절감 방법은 오히려 손쉽다. 먼저 가전제품부터 대기전력을 줄이거나 가전제품과 벽의 리셉터클 사이에 연장선(extension cord)을 넣어 사용자가 쉽게 전원을 온오프할 수 있도록 하면 1년에 5000억원에 해당하는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
미국과 호주는 각각 2001년과 2002년에 가전기기 1대당 대기전력이 1W 이하가 되도록 하자는 ‘1W 선언’을 했고, 이에 따라 제도를 차근차근 정비해 가고 있다. 우리도 2004년 11월 12일에 ‘1W 선언’을 했으나 이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추동력(推動力)이 전무(全無)한 상태다. 에너지 수입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우선 대기전력만이라도 줄이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김윤명 단국대학교 전자·전기 공학부 교수(gimm@d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