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CIO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비즈니스부문이 IT부문에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가트너의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 결과를 보면, 글로벌 조사에서는 최우선으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개선’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기업 전체 비용 절감에 역할 기대’가, 세 번째로는 ‘전 조직원들의 업무수행 효과를 제고시키는 데 기여해 주길 원한다’가 선정됐다.
그러나 아시아 대상의 조사 결과에서는 1위와 2위는 순서만 바뀌었을 뿐 비슷하다. 그렇지만 3위인 ‘효과적 업무수행에 대한 역할을 IT에 기대한다’는 항목은 7위로 밀려나 있다.
이를 보면서 언젠가 우리나라의 화이트컬러의 오피스 생산성은 미국보다 1.5배 정도 낮다는 조사결과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목표를 두기보다는 일하는 양으로 해결하려는 인식이 아직도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그 중에서도 IT조직이나 IT프로젝트를 수행하는 SI회사의 경우 직원들이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과 휴일을 희생하는 헌신의 조직이다. 그래서인지 개발을 중국이나 인도에 오프쇼어로 아웃소싱할 경우 1인당 단가는 우리나라가 3배 이상 비싸겠지만 시간당 단가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본다.
이런 사회적 현상의 결과로 대학의 이공계학부에서 전공학과 선택시 컴퓨터관련 학과 선호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려 심각한 수준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업 경쟁력에 IT부문이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되어 가고 있는데 오히려 우수한 인력은 이를 기피하게 된다면 몇 년 안에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한 게 아닌가?
일하는 환경의 악화는 곧바로 기업의 경쟁력에 직결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IT부문만이 아닌 기업 전체의 과제로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의 하나로, IT부문과 비즈니스부문이 파트너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일하는 방법을 바꾸어 보는 것을 제안한다. 즉 비즈니스부문과 IT부문의 관계가 요구사항을 주고받는 협상의 관계에서 서로의 가치를 공유해 극대화하는 파트너십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IT부문이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이상의 부가가치가 가능하다고 본다.
IT가 더할 수 있는 가치는 IT를 비즈니스의 전략적 도구로 제공하는 것도 있지만, 쉬우면서도 더 높은 가치는 바로 조직 내에서 IT부문만이 독특하게 획득하고 제공할 수 있는 세밀한 전사적 통합의 능력이다.
회사 내에서 모든 전략과 프로세스와 정보가 모이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IT부문 아닌가 싶다. 옆 부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비즈니스 부문간에는 잘 모를 수는 있어도 IT부문에서는 이를 모두 알 수 있다. 이는 비즈니스가 모두 IT부문으로 모여 완성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부문에서 아무리 획기적인 신상품도 IT가 문전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게임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IT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종종 프로세스 개선을 비롯하여 조직혁신의 역할을 IT부문이 맡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높은 가치의 기회도 요구사항만을 주고받는 협상의 관계가 된다면 잃어버리게 된다. 파트너십 관계가 되면 자연스레 비즈니스 전략수립의 초기부터 비즈니스부문과 더불어 같이 논의할 수 있게 되어 부분 최적화가 아닌 전체 최적화를 통해 전사적인 시너지효과와 상품 적시성을 훨씬 높일 수가 있다.
또한 IT부문에서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관련된 IT과제들을 준비할 수 있고 중복을 줄일 수가 있으니 가스관 공사 따로, 케이블 공사 따로, 하수도 공사 따로 하는 식으로 매일매일 도로를 파는 우를 범하지 않아도 된다. 동네축구와 프로축구의 차이가 무엇인가? 동네축구는 공만 보고 우르르 쫓아다니지만 프로축구는 각자의 위치선정, 적시의 패스, 뛰어난 개인기 모두가 어우러지게 된다. 쏟아져 나오는 요구사항만을 동네축구처럼 쫓아다니면 관중을 모두 잃게 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좋은 위치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며,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만이 관중의 사랑을 받게 된다. 이러한 파트너관계를 통해 중복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일함으로써 IT부문의 일하는 환경이 개선되게 된다.
마지막으로 파트너십 관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실력과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IT내부의 혁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파트너끼리 깊은 신뢰관계를 가지려면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IT부문에선 기술 언어가 아닌 비즈니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동시에 비즈니스 부문은 IT부문에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보면, 비즈니스를 위해 숨겨져 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인수 동양그룹 상무(CIO) loveis@tongya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