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니즈월은 만리장성이다. 얼마 전, 동쪽 끝 단둥에서 서쪽 끝 간쑤성까지 지금까지 알려진 6300㎞보다 2500여㎞가 더 긴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차이니즈월은 기원전 5세기부터 중국의 각 왕조를 거치며 계속 증축돼 왔다. 로마가 사통팔달의 도로를 닦아 세계사 주인공으로 군림했다면 동시대의 중국 진 왕조는 차이니즈월로 폐쇄된 왕국을 건립해온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차이니즈월은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의 글로벌기업 내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기업 내에서의 차이니즈월은 ‘정보교류 차단 원칙’을 의미한다. 서로 정보가 오가서는 안 될 조직 간에는 동일한 상사 아래서 일하지 않고(조직의 분리, 분사), 동일한 공간 내에서 일하지 않고(파티션과 업무 건물 분리), 불필요한 정보공유와 통신을 하지 않는 것이 기업 내에서의 차이니즈월이다.
우리 나라에도 차이니즈월이 도입된다.
2009년 2월 4일자로 시행된 자본시장법 제45조 (정보교류의 차단) 규정에는 ‘정보교류 차단 원칙’인 차이니즈월을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융투자업자는 그 영위하는 금융투자업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경우 1.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에 관한 정보,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2. 임원(대표이사, 감사 및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회의 위원을 제외한다) 및 직원을 겸직하게 하거나 3. 사무공간 또는 전산설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으로 공동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다.
최근 정보교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e메일과 메신저다. 따라서 차이니즈월에는 e메일과 메신저 통제 혹은 기록이 중요한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 비즈니스에서의 차이니즈월은 미국 사례가 사실상의 표준이다. 미국에서는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 있는 부서끼리는 회식도 같이 하지 않는다. 업무를 물어보는 것도 금물이다. 영국에서 차이니즈월 사례는 우리 나라에서처럼 법조항으로 명시돼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차이니즈월을 설치해야 하는 기업은 대표적으로 우선 증권사다. 사실 증권사는 예전부터 고객과의 통화내용을 기록해 사후에 발생할 수도 있는 혼란을 방지해왔다.
7년 전부터는 펀드매니저나 트레이더의 메신저가 포함된 통신(메일·웹메일·웹하드·메신저)을 기록해 루머 확산이나 부적절한 정보교류를 막음으로써 개미투자자를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통신기록관리가 자본시장법의 차이니즈월 규정에 따라 법제화됐으며 내부와 내부 사이의 통신으로까지 확대됐다. 이제 증권사는 내부자 간 웹메일, 내부자 간의 메신저 통신이라 하더라도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부서일 때는 통신을 차단하거나 기록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겸업금지 빗장을 푼 자본시장법으로 말미암아 한국에도 골드만삭스나 JP모건을 뛰어넘는 글로벌 투자은행이 탄생할 수 있게 됐다. 대형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내부정보 통제가 상징하는 도덕성이 뒷받침될 때에만 대형 투자은행의 존재는 긍정적일 수 있다. 자본시장법의 차이니즈월이 규정한 내부정보 통제 및 기록관리시스템이 대형투자은행의 도덕성 준수에 중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김대환 소만사 대표 kdh@soman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