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K-IFRS 돌출변수 `수두룩`···준비가 부족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시스템 구축에 착수한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 특히 사전 컨설팅까지 수행하고, 많게는 3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는 은행권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면서, 당초 예상치 못했던 이슈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K-IFRS는 2009 회계연도 결산부터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올 하반기까지는 시스템 구축을 완료해야 한다. 2010년 1년간은 기존 회계기준과 병행해 사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내년부터 K-IFRS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각종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대부분의 기업은 K-IFRS와 현행 기업회계기준(K-GAAP)을 병행해 사용하도록 한 1년 동안 시스템을 수정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도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이 문제인가=현재 K-IFRS 대응을 위해 시스템을 구축중인 은행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전 준비 소홀로 발생한 이슈들이다. 이중 상당수 문제점들은 사전에 예상한 것이지만,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골치아픈 문제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시스템 구축에 앞서 진행했던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제대로 요건분석을 못하다 보니,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다시 요건 분석을 한 사례도 많다. 문제는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요건 분석에 필요한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일단 시스템을 구축한 후 나중에 수정해 나가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 K-IFRS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은행들이 시스템 측면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기존 회계시스템을 K-IFRS 기준에 맞게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비금융상품 부분에 K-IFRS를 적용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 일반적으로 비금융상품에 우선순위를 두고 K-IFRS를 적용해야 하는데, 많은 은행들이 금융상품에 먼저 K-IFRS를 적용하고 있다.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비금융상품보다 금융상품에 대해 훨씬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보니 금융상품 위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율변동효과 반영을 위한 외화환산, 유무형 자산, 퇴직급여, 종업원급여, 자산관리 등 비금융상품에 K-IFRS를 적용하려면 필요정보 및 데이터 도출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프로젝트 우선순위에서 금융상품 영역에 밀리고 있다.

심지어 경영진을 비롯해 관계자들이 비금융상품에 대한 K-IFRS 적용 요건을 잘 알지 못해 이를 도외시하는 경우도 있다. 비금융상품에 K-IFRS 요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일정 시간이 지난후 프로젝트에 난항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기존 K-GAAP에서는 비금융상품의 경우 재무회계 반영을 위한 기초정보만을 필요로 했으나, K-IFRS를 적용하려면 공정가치 산출을 위한 기초정보나 적용할인율 등이 추가로 반영돼야 한다. 그만큼 회계시스템에 반영해야 할 로직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윤호 SK C&C 부장은 “비금융상품에 K-IFRS 요건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관련 현업부서들이 프로젝트 초기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번째는 K-IFRS 프로젝트 과정에서 새 회계기준에 걸맞은 회계처리 프로세스나 방법론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최초 적용을 위한 계정처리 및 본결산 방안, 환원계정처리, K-IFRS 기반의 가결산을 위한 상세한 이행전략이 수립되지 않아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 회계처리 프로세스나 방법론을 확립하려면 개시 대차대조표(B/S) 작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 데이터를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은행들이 과거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를 제대로 하지 않아 차후 테스트 및 시스템 이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번째는 새로 산출되는 계정과목의 수치들에 대한 검증 절차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K-IFRS가 적용되면 여신충당금을 새로 쌓아야 한다. 또 파생상품이나 유가증권을 평가할 때 새 기준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때 새로 산출되는 계정과목의 수치들이 적절한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많은 은행들이 적절한 방법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여신충당금의 경우 기존 예상손실금 기준에서 발생손실금 기준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충당금 규모가 달라지는데, 이 달라지는 수치에 대한 검증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백승은 LG CNS 총괄은 “현재로서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에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지금으로서는 각 단계별로 값을 검증하거나,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일부분을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것 정도가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K-IFRS에 따른 계정과목의 수치들을 검증할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들이 이를 검증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흡한 사전 준비=K-IFRS 대응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준비 과정이 부실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많은 은행들은 앞서 진행한 컨설팅의 문제점을 우선 지적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오랜 기간과 많은 비용을 투입해 컨설팅을 하고 나면, 바로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면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하면서 또 다시 요건 분석을 진행하는 등 설계를 위한 컨설팅을 사실상 다시 하는 등 중복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프로젝트 투입 인력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초기에 ‘K-IFRS 태스크포스팀(TFT)’이 구성돼 요건분석을 실시하고 나면, 시스템 구축과정에서는 초기 TFT 인력이 모두 배제되고, IT부서 주도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며 “초기 TFT 인력이 참여하지 않아 시스템 구축에 요건 분석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현업관계자가 파일럿 형태로 구축된 화면을 보여주면 그제서야 요건 분석이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초기부터 현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다보니 프로젝트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K-IFRS 재무회계를 위한 업무 프로세스를 조기에 확립하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기존 K-GAAP 기준에서는 계정계의 계리 영역을 통해 이뤄졌던 재무회계 프로세스가 K-IFRS에서는 다른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즉, 기존에는 계정계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지던 계정과목의 회계처리가 이제는 별도의 회계시스템에서 이뤄져야 하는 만큼 계정계시스템과 신회계시스템간 데이터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결산 프로세스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정윤호 부장 “개별 은행의 시스템 아키텍처에 따라 다르겠지만, K-IFRS 시스템의 현금흐름, 공정가치, 유효이자율, 상각 등의 기능을 활용한 새 결산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한다”면서 “이는 K-IFRS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체크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K-IFRS=국제회계기준(IFRS)과 내용이 동일하지만, 한국의 법체계에 맞춰 형식을 다소 변경한 회계기준이다. 기준서·해석서 번호, 적용범위, 경과규정 등 형식적인 차이만 존재한다. 공개초안에 대한 외부의견 수렴 등 정규 제정절차를 거쳐 2007년 12월 21일 제정·공표됐다.

신혜권기자 h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