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에 발목을 잡았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생 사건이 결국 무죄로 판결났다. 대법원이 10여 년 동안 끌어온 삼성 경영권 승계 논란에 면죄부를 내리면서 이재용 전무 주도의 경영권 인계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직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어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와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건에 대해서도 사실상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지난 96년 이 전무가 주당 7700원에 에버랜드CB 90억원어치를 인수한 것에 대한 위법 여부를 다뤘다. 당시 CB 시장에서 8만5000원 상당에 거래되던 에버랜드 CB를 10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에 이 전무에게 넘긴 것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허씨와 박씨는 대법원에 앞선 공판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공모해 회사에 97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원심에서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에버랜드 CB사건은 지난해 4월 조준웅 특검팀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을 기소하면서 재차 법원의 판단을 받았으며, 이 재판의 1심과 2심은 이 전 회장의 관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사실상 면죄부를 주면서 삼성은 경영권 승계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10여 년 동안 이어진 편법 승계 논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안팎에서는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합법성을 인정받아 이재용 전무 체제로 전환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은 법적 논란과 별도로 이미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 사장단’으로 구성되는 삼성 경영의 핵심 경영 축을 허물고 새로운 체제 구축을 위한 시동을 건 상태였다. 올해 초 이뤄진 사장단의 과감한 세대 교체,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조직 개편 등이 모두 중장기적으로 이재용 전무 체제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평가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완전 면죄부를 받았다는 평가는 아직 이르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경영권 편법 승계 문제를 둘러싼 10년에 걸친 지루한 법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여전히 삼성에 다소 시니컬한 국민 정서를 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즉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민정서법’에 따른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벌써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경제개혁연대와 김용철 변호사 등 시민사회단체는 강력한 비판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로 삼성은 이재용 전무 체제를 위한 변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본다”며 “다만 국민 정서를 감안해 당분간 삼성은 여론의 향배를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 간 지분 구조는 이재용 전무가 최대주주인 에버랜드가 삼성생명(19.34%)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7.26%)와 삼성카드(27.51%), 삼성물산(4.8%)을, 삼성전자가 삼성카드(36.9%)를, 삼성카드가 에버랜드(25.64%)를 지배하는 핵심계열사 간 순환형 지배구조로 되어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