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불황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던 산업현장에서 봄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들어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각종 소비재 판매량이 증가하는 등 실물경기의 회복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4월 산업활동 동향’에서도 확인된다. 4월 광공업 생산은 전달보다 2.6% 늘었고, 3월에 감소(-1%)했던 서비스업 생산도 한 달 만에 증가세(2.7%)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경기가 이미 바닥을 쳤다는 낙관론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서비스 부문과 제조업 분야의 여전한 침체로 인해 본격적인 경기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에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전자ㆍ자동차ㆍ정유ㆍ유통 ’갬’ = 삼성전자 광주공장은 요즘 에어컨 주문이 밀리면서 잔업에 주말 특근까지 하고 있다. 냉장고 부문은 미주 시장의 수요가 꾸준해 하루 8시간씩 100%에 근접한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을 예상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에어컨 예약 판매가 3월부터 괜찮았고, 냉장고나 세탁기 판매는 예년 사이클로 돌아가고 있다”며 “가전 부분 실적이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LG전자도 여름철 가전시장이 활황 조짐을 보임에 따라 총력 생산체제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 13일부터 경남 창원의 에어컨 공장 라인을 24시간 가동하기 시작했고, 주말 특근을 작년보다 두 달가량 앞당겼다. LG전자 관계자는 “4~5월 휘센에어컨 판매량이 작년 동기 대비 60% 늘었고, 일부 모델은 물량 부족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최근 공장 가동률을 95% 선까지 높였다. 지난해 하반기 한때 80%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회복세다. 자동차 분야도 올해 1월 내수 및 해외 판매량이 바닥을 친 이후 서서히 판매가 늘고 있다. 작년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각국이 자동차 산업 부양책을 시행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판매량이 증가하고, 국내 내수시장에서도 노후차 교체에 대한 세금감면 조치로 활력이 감돌고 있다. 실제로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전체 판매량은 7만9천550여대로, 지난 4월(5만1천930여대)에 비해 53% 늘어났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의 공장 가동률이 지난달 85%에서 이달에는 89%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의 수요급증으로 호황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부양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올 1분기 합성수지 수입을 43.6%나 늘렸고, 이 같은 추세는 2분기에도 계속됐다. 이에 따라 나프타분해공장(NCC)을 운영하는 LG화학, 삼성토탈 등 6개 업체는 물론 유화제품 생산업체인 한화석화, 대림산업 등이 모두 100%의 공장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철강업계에도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인다. 지난해 12월 창사 이래 처음 감산에 들어간 포스코는 1분기(25%)보다 다소 줄어든 15%의 감산율을 유지하고 있고, 현대제철의 공장가동률은 현재 80%대를 기록해 1분기(75%)에 비해 좋아졌다.
항공업계의 업황도 개선되고 있다. 국제선 여객선의 탑승률은 계절적으로 비수기인데다가 신종플루 같은 악재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5~6월 70%대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제 화물 운송 분야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올 1월 물동량이 4만t을 밑돈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 4월과 5월 현재 4만8천t에 이르고 있다. 대한항공도 올 1분기 물동량이 작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지만 4월 물동량은 전년 대비 15% 줄어드는데 그쳐 감소폭이 축소됐다.
대표적인 내수지표인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매출도 작년에 비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3월부터 5월28일까지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4.0%(기존 점포 기준) 늘었고, 신세계백화점의 매출 신장률은 4월 5.4%에서 5월 8.3%로 상승했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생필품 위주의 대형마트는 백화점보다 실적이 낮지만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는 4월 1.2%, 5월 1.3%, 홈플러스는 3~5월 3.9%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 조선ㆍ건설ㆍ여행 ’아직 흐림’= 조선, 건설 및 여행 분야는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조선업계는 작년까지 확보해 놓은 수주물량을 건조하면서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수주 가뭄’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 업체들은 가동률이 100%에 육박하고, 매출도 지난해보다 늘었다. 그러나 신규 수주실적은 연초 삼성중공업이 유럽 선사로부터 천연가스 생산선박인 LNG-FPSO(부유식 원유생산저장 설비) 1척을 9천억원에 따낸 것을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이다.
건설업계의 불황도 계속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3월 국내 건설공사 수주액은 총 20조9천12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23조5천545억원) 대비 14.1% 감소했다. 아파트와 사무실 등 건축 수요가 위축되면서 민간 부문의 공사 수주 물량은 9조4천537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38.5%나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공공공사 조기 발주가 건설업계에는 가뭄 속의 단비가 되고 있다. 올해 국내 건설사의 1분기 공공공사 수주액은 총 11조4천58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전반적인 건설경기의 침체는 시멘트 업계에 타격을 주고 있다.
시멘트업계의 총 생산량은 올 1분기까지 988만t으로, 작년 동기 대비 2.4% 줄었고, 출하량(내수 판매)은 961만t으로 2.6% 감소했다. 각종 대내외 변수가 민감하게 반영되는 여행업계는 최근 환율 안정에도 신종 인플루엔자 발생 등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하나투어는 이달 예약객이 작년 같은 달에 비해 38% 줄었고, 6월 예약도 작년 동기 대비 30%가량 마이너스 실적을 보였다. 모두투어는 이달부터 8월까지의 여행객 모집 실적이 작년 동기 대비 40% 안팎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 ‘낙관하긴 일러’ 경계론도 = 산업계는 경기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완연하게 회복됐다고 볼만한 뚜렷한 지표가 없는데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정치적 불안이나 북한의 도발 같은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올 상반기에 나타난 일부 지표의 개선된 모습이 정부의 경기 부양책 등에 따른 인위적인 결과인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의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 자동차의 경우 작년 말부터 시행된 개별소비세 인하 시책이 6월 말로 끝나면 7월부터 국내 수요가 다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들이 신규 사업과 설비투자를 크게 줄인 상태이고, 북한의 도발 같은 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으로 돌아섰다고 단언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 합 뉴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