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질 수준을 결정하는 건 패널, 엔진, 화질 보정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알고리듬입니다. 화질 결정 요소를 100으로 볼 때 패널과 엔진 비중이 90정도입니다. 디스플레이 패널 상태와 디지털 화면을 수신하고 구동하는 엔진에 따라 화질 차이가 크게 납니다. 그렇다고 패널과 화질을 보정해 주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패널과 엔진을 고려할 때 사실상 알고리듬에서 우열이 결정나기 때문입니다.”
박용음 지피엔씨 사장(41)은 TV 화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모니터에서 TV까지 디스플레이 분야에 몸담은 지 10년을 훌쩍 넘겼다. 97년 콤텍에서 LCD모니터 사업을 시작한 후 98년 데이타 뷰와 2000년 뷰테크를 공동 창업했다. 이어 2001년 디지털TV 시장을 위해 지피엔씨를 설립했다. 브라운관 시절부터 TV 한 우물을 판 대기업 엔지니어에 비교하면 ‘기술적인’ 전문성은 떨어지겠지만 디스플레이에서는 뒤처지지 않는 경력을 자랑한다.
지피엔씨는 벌써 창업 8년째를 맞는 중소 TV업체지만 자체 생산 라인을 두고 아직도 ‘건재하게’ 브랜드 사업을 펼치고 있다. 5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TV업계의 ‘작지만 강한 기업’인 셈이다. “2000년 초반 수십 개 TV업체가 난립했습니다. TV가 브라운관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조립 사업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패널, 엔진 거기다 약간의 생산 노하우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결국 TV는 기술이 아닌 가격과 마케팅 싸움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고 가격에서 경쟁력을 가진 중소업체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본 거죠.”
그러나 예측과 달리 디지털TV 시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가격’을 무기로 틈새 시장에서 선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중소기업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고 비즈니스 규모만큼 기술력에 투자를 못한 게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왔습니다. TV 자체 경쟁력은 결국 기술이라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실제로 지피엔씨의 LCD·PDP TV인 ‘디.스퀘어’ 제품은 대기업 제품과 화질을 평가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입소문만으로 매월 1500∼2000대 가량이 온라인을 통해 꾸준히 팔리고 있다. 지난해 중소업체로는 120Hz 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한 데 이어 올해에도 32인치 풀HD급 LCD TV 제품을 첫 개발해 관련 업계를 놀라게 했다. LCD 방수 기술 특허를 기반으로 전자칠판 쪽으로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박 사장은 “디지털TV 시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제조 노하우와 화질 구현 기술력을 놓고 볼 때 국내 브랜드가 세계 시장을 평정할 날이 멀지 않았다”라고 힘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표준 화질과 감성 화질
최근 TV화질 논쟁과 관련해 떠오르는 개념이 바로 ‘감성(Enhanced) 화질’이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화질은 ‘재현(Standard) 화질’이 대명사였다. 재현 화질은 전문가와 평가기관이 인정하는 표준 화질이다. 방송국 모니터 동등 수준의 색 정확도를 기준으로 이에 가까운 화질을 구현하는 게 디지털TV 업계 최대 과제였다. 재현 화질은 한 마디로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을 실제 TV에서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TV 업계는 이를 위해 색 오차 조정을 위한 다양한 알고리듬을 개발했다.
반면에 감성 화질은 TV를 보는 소비자 즉 고객 입장에서 바라본 화질이다. 소비자 개개인이 좋아하는 색감이 있고 이를 구현해 주는 게 바로 화질 싸움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윤주호 LG전자 책임연구원은 “감성 화질은 쉽게 말해 고객이 좋아하는 화질”이라며 “영상에 따라 역동적인 색감을 구현해 준다”고 말했다. “가령 사과 영상을 예를 들면 더욱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게 감성 화질입니다. 좀 과장해 원본 색감을 다소 왜곡하더라고 소비자가 오히려 편하면 그게 화질의 정답인 셈입니다.” 윤 연구원의 친절한 설명이다.
주요 업체는 이미 일반인을 대상으로 선호 색 조사를 통해 감성 화질 구현을 위한 기초 색감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놓았다. 소비자가 좋아한다면 화면에 보이는 영상 자체가 다소 왜곡돼 있더라도 오히려 대세로 인정받는 화질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