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슬라이드 터치폰을 구매한 경기도의 박모씨(36)는 충전기를 휴대폰에 꽂아 사용할 때 기기가 오작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메시지 버튼이 엉뚱한 기능으로 연결되고 화면을 한 번만 눌렀는데도 연속으로 인식되는 이상이 생겼다. 박씨는 AS센터로부터 ‘TTA 인증’을 받은 정품 충전기를 사용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불량 충전기를 계속 쓰면 배터리 수명 단축은 물론이고 휴대폰 고장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공짜로 받은 충전기 때문에 70만원짜리 휴대폰을 망칠 뻔했다”고 말했다.
‘공짜 충전기가 당신의 휴대폰을 갉아먹는다.’
중국 등지에서 무차별적으로 수입된 불량 충전기가 시중에 나돌고 있다. 휴대폰 대리점이 공짜로 끼워 주는 충전기 중 대부분이 TTA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으로 추정되며 휴대폰 고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통되는 휴대폰 충전기의 60∼70%가 TTA 인증을 받지 않은 불량 충전기로 나타났다. 휴대폰 충전기 시장은 월 100만대 규모로 추산된다.
휴대폰 충전기 생산업체 관계자는 “최근 1∼2년 새 환율 상승에 따른 제조원가 급등과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정품 충전기의 절반 가격도 안 되는 비인증 충전기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유통되는 휴대폰 충전기의 70%가 비인증 제품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비인증 충전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다. 원가가 1100원 수준으로 정품(250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들 제품은 ‘휴대폰 액세서리’로 분류돼 무관세로 수입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불량 충전기가 휴대폰 오작동 등 ‘눈에 보이는’ 피해 말고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충전기 인증 업무를 관장하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관계자는 “비인증 충전기는 대부분 전압이 일정하지 않아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며 “배터리 수명 단축, 휴대폰 전원단 회로 파손은 물론이고 심하면 폭발 위험까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TTA 인증이 의무 사항이 아니고 권장 사항이라는 점이다. 이 제품을 단속할 근거가 없다. 특별한 이상이 발생하기 전에는 소비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가의 휴대폰을 위험에 노출시킨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수입 업체들뿐 아니라 불량 충전기를 끼워주기 형태로 뿌리는 휴대폰 대리점도 문제”라며 “TTA 인증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충전기 수입과 통관 과정에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