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초고층빌딩의 사회학](https://img.etnews.com/photonews/0906/090610042458_239387361_b.jpg)
미국의 SF작가 로버트 실버버그는 1971년에 ‘더 월드 인사이드(The world inside)’라는 SF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세계 인구가 750억명에 달한 서기 2381년의 미래가 배경인데, 높이 3000m에 층수가 1000층인 ‘어번 모나드(urban monad)’라는 초고층빌딩들이 여기저기 솟아올라 있다는 설정이다.
이 건물 하나에 살고 있는 인구는 총 80여만명이며 40층마다 하나씩 총 25개의 독립된 ‘도시’들이 있고, 최고 통치자는 맨 위층의 도시에 산다.
실버버그는 지구 전체가 이런 식의 초고층빌딩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론적으로 2000억명의 인구도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웃한 어번 모나드는 서로의 그림자가 닿지 않을 만큼 떨어뜨려서 세우고, 그 외의 땅은 모두 농업용 경작지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래의 지구가 이런 모습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어번 모나드라는 초고층빌딩의 설정 자체는 상당히 호기심을 자아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초고층빌딩의 건설 계획들이 연이어 나왔기에 더욱 그렇다. 송도의 인천타워나 잠실 롯데월드, 상암DMC, 용산 등에는 모두 500m가 훌쩍 넘는 초고층빌딩들의 건립 청사진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초고층빌딩과 관련해서 현재까지 주로 이슈가 되는 것은 그 건축 공법이나 유지, 운용에 관한 부분들이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태풍, 지진, 항공기 사고나 테러 대비책, 그리고 에너지 운용 계획이나 건물 내 이동수단의 효율적 배치 등등의 과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물 높이가 1000m를 넘어가면 기압이나 기타 기상환경 조건이 질적으로 달라진다. 이를테면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들은 고산병에 걸릴 수도 있다. 또 내부 생태계의 원활한 지속을 위해서 태양열의 이용도 적극 도입해야 하며, 건축물 내부의 교통과 물류 시스템도 완전히 새롭게 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초고층빌딩이 완공된 뒤에 대두될 문제점은 바로 ‘초고층빌딩 사회학’이 아닐까.
배명훈의 연작소설 ‘타워’는 높이 2408m에 674층인 건물 ‘빈스토크(원래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거대한 콩 줄기 이름)’를 무대로 삼아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블랙코미디 식으로 풀어 낸 작품인다.
여기에는 ‘수직주의자’와 ‘수평주의자’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나온다. 인구 50만명의 빈스토크 역시 앞에 소개한 ‘어번 모나드’와 마찬가지로 건물 아래쪽에 국경을 둔 독립국가로 설정돼 있다.
이 밖에도 테드 창의 단편 ‘바빌론의 탑’이나 니헤이 쓰토무의 만화 ‘블레임’ 등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층 구조물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20세기까지 익숙했던 ‘광활한 대지’의 서사가 아닌 ‘수직적 모험’을 다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단절’과 ‘폐쇄’ ‘고립’ 등의 테마를 주요하게 묘사한다.
머잖아 현실로 다가올 초고층빌딩의 시대는 어쩌면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초고층빌딩의 사회학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해서 다각적인 연구와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cosmo@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