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야기] 르팽

 보르도의 포므롤 지역은 페트루스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최근에는 떠오르는 ‘신데렐라 와인’ 르팽(Le Pin)으로 그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포도밭 앞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포도원의 이름을 르팽으로 지었다는 이 와인은 이른바 창고 와인(garage wine)의 원조다.

 1924년 마담 루비가 2㏊ 남짓한 조그마한 밭을 사서 와인을 재배해오다가 1979년 사망하면서 와인으로 유명한 티앙퐁 가문이 인수해 오늘날의 세계적인 와인을 탄생시켰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와인 컨설턴트인 미셸 로랑이 무명시절에 이 와인을 컨설팅해 성공을 거두자 본인도 유명세를 타게된 계기가 됐다.

 포므롤 지역의 주 포도 품종인 메를로 92%, 카베르네 프랑 8%로 브랜딩해 만든 이 와인은 짙은 루비색상과 풍부한 커피향, 토스트 향, 설탕에 절인 과일의 달콤한 아로마가 요염할 정도로 황홀감을 주며 메를로 특유의 벨벳같이 감기는 풀보디의 부드럽고 라운드한 타닌과 신선한 피니시가 압권이다.

 페트루스가 강건한 남성상이라면 르팽은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상이라 말할 수 있다.

 르팽을 양조하는 포도밭은 매우 척박한 땅으로 자갈과 모래가 섞인 점토질의 토양에서 30년 된 포도나무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하며 티앙퐁가가 인수한 1979년이 르팽의 첫 빈티지지만 본격적인 맛은 1981년 빈티지부터였으며 그해 슈퍼 세컨드와인으로 평가받는 등 30년도 채 안 돼서 세계적인 와인으로 올라섰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유명 와인으로 발돋움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995년 페트루스를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와 르팽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가 독일에 모여 빈티지별 블라인드 테이스팅한 결과, 르팽이 9개 빈티지, 페트루스가 4개 빈티지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자 무명의 르팽이 일약 신데렐라로 등장한 것이다.

 1년에 고작 500케이스 정도만 생산해 르팽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드니 혹시 기회가 생기면 만사를 제치고 마셔보기를 권한다.

 구덕모 와인앤프렌즈 사장 www.wineandfrie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