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자바 개발자인 A씨. 대학 때부터 개발을 시작해 개발 경험만 10년인 그는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창업까지 할 정도로 이 분야에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최근 펀드 매니저로 진로를 바꿨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만큼의 보상과 배분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에서 더 이상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씨는 “많은 고민 끝에 선택했고, 지금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사례 2 중소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B씨는 대학에서 석사까지 마친 후 병역특례로 관련 분야 개발을 시작했지만 최근 진로 변경을 고민 중이다. 자기 생활도 없이 일을 하지만 임금도 적고, 자기 계발을 하려 해도 시간과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B씨는 “선배들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임원이나 관리직으로 가다 보니 지속적으로 개발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미국에서는 프로그래머가 고급직인데 우리나라는 3D로 인식되는 것 같다”며 푸념했다.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SW) 업계를 떠나고 있다. 머리가 희끗해질 때까지 현장에서 독창적인 전문성을 지닌 개발자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첫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꿈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개발자들 역시 하는 일에 열정과 애정보다는 ‘배운 도둑질’이기 때문에 일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 SW진흥원이 지난달 발간한 ‘국내 SW 인력 현황’에 따르면 SW 기업 종사자 10명 중 7명꼴인 68.8%가 이직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가장 많은 32.1%가 ‘회사의 장기비전이 없어서’를, 24.0%는 ‘임금수준이 낮아서’를 이직의 이유로 꼽았다.
유망 인력들이 업계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열악한 업무 여건과 불투명한 미래다. 열악한 업무 여건은 단순히 다른 직장이나 직종에 비해 연봉이 낮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문성을 쌓기 위한 지속적인 자기 계발의 어려움과 SW를 하드웨어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사회적 인식까지 포함된다.
빠르게 산업 동향이 변하는만큼 현장에서 재교육은 개발자와 기업 모두에 절실한 요소다. 하지만 일부 코스닥 상위업체와 대기업을 제외하고 인력 재교육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SW 기업의 기업 규모와 재교육 기회 제공 비율은 정비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SW 기업들은 재교육의 애로사항으로 ‘시간제약’과 ‘예산부족’을 꼽아 재교육의 관심과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반영하기 어려움을 시시한다.
특히, SW 산업 종사자 중 기술 수명이 다한 후의 진로에 관해 ‘재교육 또는 진학을 통한 기술 획득’을 꼽은 사람은 37.9%에 불과했다. 35%는 자영업이나 개인사업을 하겠다고 답했고, 16%는 ‘SW와 관련이 적은 직무로 전환’을 장년 계획으로 꼽은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개발자로 남고 싶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개발과 멀어져야 하는 산업 현실도 고급 인력들의 열의를 꺾고 있다. 임원이 되면 개발과 멀어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결국 그렇게 될 바에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기업으로 돌아온다. 개발자들은 힘들어 떠나고, 기업들은 떠나는 개발자들 때문에 힘들다. 지역에 있는 기업들은 대기업이라도 해도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한다.
황시영 현대중공업 전무는 “현장에서 기술자들을 받아들여 교육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린다”며 “그러나 지역에 사업장이 있다 보니 기술자들은 기술을 익혀 자꾸 떠나가 난감하다”고 말했다.
또, “결국 이 상황이 지속되면 지역 SW 기업들은 사업을 포기해야만 한다”며 “인재를 키워서 지속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지역 사업이 없을지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업계 종사자들은 인력 수급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고급인력을 양성하고 그 인력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영규 삼성테크윈 상무는 “정부가 융합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교육부도 같은 정책을 갖고 뛰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치프 아키텍트들을 키우는 데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만 전체 산업이 성장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상무는 “사실상 SW가 앞서 있는 곳은 유럽과 미국이기 때문에 그 인력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까지 고민해야 할 지경”이라며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교포나 유학생들을 활용해 버추얼 코리아 파워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일평 삼성전자 상무는 어렵고 힘든 직종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미있고 좋은 분야를 확산시키고, 현업에서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화가 형성되면 도움이 된다”며 “스탠퍼드에서 아이폰프로그래밍이라는 과정을 만든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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