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두 가지는 바로 ‘물’과 ‘공기’다. 좋은 물과 공기만 있다면 건강한 삶도 어렵지 않다. 건강 가전도 물·공기와 직접 연관돼 있다. 건강 가전으로 불리는 ‘웰빙 가전’은 건강하게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전자 제품을 말한다. 웰빙 가전은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가전에서 삶 자체를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도와주는 가전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건강 가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먼저 기존 가전 제품에 건강 기능을 집어 넣는 추세다. 냉장고·에어컨에 살균·제균·탈취 기능을 강화하고 세탁기에도 매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최진균 삼성전자 부사장은 “앞으로 가전은 감성, 친환경, 에너지 절약 기능에 헬스 케어가 필수 기능으로 탑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에어컨에는 공기 청정에서 바이러스 살균, 심지어 집중력을 높이고 활성 산소를 중화해 피부 노화 방지를 돕는 기능까지 선보였다.
건강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하우젠 드럼 세탁기는 90도까지 내부 온도를 높일 수 있다. 피부염과 아토피의 원인인 집먼지 진드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세탁 기술이 뛰어나도 단순 세탁만으로는 진드기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90도 고온에서 한 시간 이상 뜨거운 바람을 침구·의류 등에 쏘이면 물을 묻히지 않고도 제균과 탈취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진공 청소기에도 물을 이용한 제균 기술이 선보였다. 한경희생활과학이 선보인 ‘한경희 아기 사랑 아토스팀’은 은나노 물통과 100도 살균 스팀, 세라믹 성분 특수 패드를 이용해 세균과 진드기, 건축 자재에서 나오는 유해 화학물질을 없애 준다.
이상규 LG전자 상무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일부 프리미엄 모델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던 살균 기능이 지금은 대부분의 가전 제품에 탑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흐름은 건강에 직접 도움을 주는 웰빙 가전의 급부상이다. 공기청정기·정수기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의 시장은 경기 불황이 무색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전문 업체 중심에서 대기업까지 뛰어들었다. 웅진코웨이는 올 1분기 정수기 판매량이 12만2880대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가량 증가했다. 지난 3월에는 2007년 8월 이후 최대 월 판매량을 기록했다. 웅진코웨이 정수기를 생산하는 유구 공장도 생산량이 작년 동기(1∼5월) 대비 20%나 늘었다. 위니아만도도 지난 4월 출시한 ‘위니아 이온정수기’가 한 달 만에 1000대가 팔려나갔다. 이 회사 이훈종 이사는 “국내 이온수기 시장 규모는 연간 15만∼20만대로 추산할 때 월 평균 판매량이 1만∼1만5000대”라며 “월 시장 점유율 면에서 10%를 차지한 셈”이라고 말했다.
시장도 ‘장밋빛 전망’ 일색이다. 백색가전 제품은 성장률이 ‘스톱’ 상태지만 웰빙 가전은 무한 잠재성을 인정받았다. 정수기 시장은 지난해 1조1000억원에서 올해 1조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온수기 시장도 지난해 25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40%가량 급성장했다.
잠재 수요를 알 수 있는 가정당 보급률을 보면 건강 가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갤럽과 관련 업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정수기 보급률은 47% 수준이다. 비데도 35%로 열 가구 중 세 가구에만 보급돼 있다. 공기청정기는 17%, 음식물처리기는 6% 수준으로 이제 막 시장이 열리는 단계다. 그만큼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세계 건강 가전 시장도 2005년 5367억달러에서 2015년 1조1645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은 “건강 가전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다”며 “앞선 국내 가전 기술력을 볼 때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대기업 진출 “약이냐, 독이냐.”
대기업의 건강 가전 시장 진출을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은 좁은 시장을 확대하고 품질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에 반대편에서는 전문 기업이 애써 개척한 시장에 ‘숟가락만 놓는 식’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전문가들까지 가세해 대기업 진출이 시장의 약인지 독인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대표 건강 가전으로 꼽히는 정수기·공기청정기·음식물처리기 등은 중소기업이 시장을 개척해 온 분야다. 한때 대기업도 발을 담갔지만 사업성을 이유로 중소기업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상황이 바뀐 건 불과 1∼2년 전부터다. LG전자가 정수기 시장에 진출하고 삼성전자가 ‘바이러스 닥터’를 앞세워 공기청정기 시장에 진출하는 등 잰걸음을 시작했다. 당연히 기존 업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LG전자 정수기 사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웅진코웨이는 음식물처리기 시장에 발을 담그면서 한편에서는 중소업체에서 원성을 사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중소업체 주장처럼 이들 품목의 시장 규모를 볼 때 아직은 대기업이 활동할 무대는 아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정수기 정도만 1조원을 넘겼고 비데가 4500억원, 공기청정기와 음식물처리기가 3000억원 규모다. 그렇다고 대기업을 싸잡아 욕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은 규모 면에서 작더라도 잠재성이 높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주장대로 국내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이 뛰어들어 소비자 인지도를 높여 중소기업도 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품목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 시장 진출과 포기는 순전히 기업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품목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규모에 따라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나뉘어 있다. 대기업이 국내보다는 더 큰 시장, 고부가가치 사업, 연구개발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쪽으로 나서는 게 중소기업과 상생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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