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Info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의 핵심인 통신업계에 엄청난 위기감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위기감의 실체는 더이상 성장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기존 음성통화 중심의 통신 시장 자체가 포화된 것은 물론이다. 내수 시장을 박차고 해외로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답은 ‘융합(컨버전스)’에 있다. 통신을 벗어나 산업 전반과의 융합을 추진하면서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 이것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입에서 입으로 논의만 돼왔던 융합 산업이 이제 바야흐로 태동의 시기를 맞고 있다. ICT의 진면목이 여기서 발현된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ICT를 중심으로 융합 환경을 조성한다면 산업 전반의 발전이 가능하다.
이미 ICT는 자동차, 환경기술 등과 융합해 인간의 생활에 혁신을 가져오는 동시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또 비용 절감과 환경 보호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런 잠재력을 발굴해서 국가 경제 성장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 정부와 업계에 맡겨진 과제다.
◇ICT의 저력=과거 ICT분야의 선전은 우리 경제를 늪에서 구해냈다. IT 버블 논란 와중에도 세계 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로 대표되는 이통 분야 성장은 서비스 제공업체뿐 아니라 인프라 구축을 위한 주변 장비업체와 단말기 업체까지 동반성장을 일궈낸 바 있다. CDMA 상용화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185조원의 생산유발효과, 222만명에 달하는 고용을 창출한 것으로 분석돼 IMF 탈출 주역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증명된다. 서비스, 장비, 단말 등을 포함한 ICT 산업은 우리 GDP의 17%라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적의 대안으로도 ICT는 빠지지 않는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고용을 창출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성장동력으로 ICT의 주요 분야인 모바일 서비스와 광대역 모바일 브로드밴드를 주목했다.
◇ICT 융합이 핵심=무엇보다 ICT의 가장 큰 힘은 다른 산업과 융합해 무한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기존 산업 전반에 ICT가 가미돼 ‘면역력’을 강화하고 있다.
ICT와 교통시스템이 만난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은 이미 해외 수출 주력상품으로 자리 매김했다. 아제르바이잔 등 세계 각국에서 국내의 ITS를 통째로 도입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ICT의 ‘엘도라도’다. 자동차 산업이 직면해 있는 환경 기후 변화, 에너지 자원 고갈, 교통 안전, 새로운 성장 등과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ICT의 역할 확대는 필수다.
ICT로 자동차 구석구석의 모니터링을 비롯해 최적의 경로 탐색, 위치기반서비스(LBS)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최근 중국 상하이 모터쇼에서 휴대폰을 이용해 자동차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모바일 텔레매틱스 서비스 ‘모바일 인 비히클(MIV)’을 선보이면서 ICT 융합 종주국의 기술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린IT와 ICT의 융합은 인류 생존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유럽집행위원회는 ICT가 유럽에서 2020년까지 최고 15%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전기와 ICT가 만난 스마트그리드는 에너지 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여 에너지 소비를 최고 10%까지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민간이 공조해 ICT 융합 터전 만들어야=이런 ICT 융합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터전 마련이 절실하다. ICT 발전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ICT와 미디어가 융합되는 첫 사례로 꼽히고 있는 방송통신 융합에서부터 걸림돌에 봉착하고 있다.
지상파와 IPTV 업계 간 콘텐츠 제공 협상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해 말 국내 융합 산업 발전을 위해 거국적으로 ‘선전송 후정산’의 합의를 이끌어냈던 것이 무색하다. 겨우 시장이 열린 방송통신 융합 산업이 삐거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겨우 한발 내디뎠던 걸음을 두 걸음 후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에서도 초기 단계인 IPTV에 채널규제 등을 과도하게 부과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ICT 융합의 넓은 시장을 만들기 위해 멀리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콘텐츠 거래 비용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마련된 융합 플랫폼 안에서 어떤 수익 모델을 공유할 수 있을지에 관한 미래 지향적인 대화를 나눠야 한다.
사업자들의 노력과 함께 정부가 융합 산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모든 사물에 네트워크를 구성, 사물 간 통신으로 각종 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미래 사물통신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구축돼 있는 광대역 통합망(BcN)과 이동통신, 와이브로 등을 통합해 유비쿼터스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기조는 관련 ICT 융합 산업 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4대 강 살리기’는 ICT 융합기술을 적용하기에 맞춤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4대 강 살리기에 유선망을 신규 구축하거나 사람 중심의 비싼 무선데이터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존 방식 대신 사물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현재보다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4대 강 유역의 수질·수위, 기상, 이산화탄소, 건물관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방통위의 분석이다.
황철증 방통위 네트워크정책국장은 “4대 강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와이브로 기반의 방송통신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건설 현장 모니터링, 종합관제서비스, 수질관리, 관광 및 레저 등의 효율성을 대폭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범정부 차원에서 대단위로 진행되는 4대 강 살리기 사업이 ICT 발전의 디딤돌로 보고 있다. 첨단 지능형 SOC 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면 프로젝트형 해외 수출 역시 기대해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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