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팹리스 기업들을 지켜 보면서 해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다들 노력은 하셨겠지만 기업은 실적인 데, 실적이 없지 않았습니까.”
호탕한 웃음 만큼이나 김경수 사장의 얘기는 시원시원 했다. 넥스트칩에 대해서도 국내 팹리스 산업 전반에 대해서도, 또 나아가 해외 시장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직설적이었지만 모두 미래를 위한 애정 어린 걱정이었고 진심이었다.
“소위 잘 나가던 국내 팹리스 기업들 모두 2000억원(매출) 고지에 오르질 못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게 해야 살아 남을 것인가.”
국내서 팹리스 산업이 성장하기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빈약한 반도체 IP(지적재산권)와 파운드리 부재, 낮은 가격경쟁력, 마케팅 능력 부재 등이 얽매인 국내 상황에서 미국 퀄컴, 대만 미디어텍 같은 글로벌 팹리스 업체의 탄생을 기대하긴 힘들다.
“‘밀착영업’이란 단어를 좋아하는데,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자사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이 어디인 지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고 그 시장을 공략할 수 있도록 현지 밀착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국내 팹리스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해외 시장 개척을 원하지 않는 경영자가 어디 있을까. 김 사장은 규모가 큰 시장만 보고 몰려갈 것이 아니라 자기 회사가 맡은 특정 영역에서 1등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팹리스 업계가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더했다. 국내 팹리스 기업 간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이다.
“멀티미디어, SD램, 모바일TV, RF, 디스플레이 관련 칩 등 각 분야의 주요 팹리스 기업들이 핵심IP 등 자산을 비롯해 해외 영업 네트워크, 마케팅 등에서 긴밀히 ‘오픈 마인드’로 협력한다면 성장의 기회를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국내 벤처기업 CEO들이 아직도 씻지 못하는 생각 중 하나가 ‘기업이 내 것’이란 오해인 데, 내 것을 내어주면 모두 망하는 것이 아니며, 내 것을 내어주고 상대방의 좋은 것을 취할 수 있다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넥스트칩은 이제 10년이 갓 넘었다. 김 사장은 스스로를 1.5세대라고 부른다. 그래서인 지 걱정이 많다. 1세대의 흔들렸던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경수 사장은 앞선 기업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 본인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두드린다. 무대는 중국이다. 사무소를 만들어 그가 좋아하는 ‘밀착영업’을 시작하려 준비 중이다. 1세대 기업들의 전철을 밟게 될 지, 성공 스토리를 작성하게 될 지는 이제 넥스트칩 스스로에 달렸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