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학과 교수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학과 교수

 ‘바벨탑 신화를 비틀어라’

 ‘서구의 자멸’(리처드코치, 크리스스미스 공저)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서구문명의 가치관은 파괴됐다. 자유와 인권, 인간성을 상징하던 위엄있는 두 개의 탑이 무너져내렸다. 연기처럼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며 9.11 테러로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폭파한 소감(?)을 밝힌 부분이 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바벨탑 신화가 그러했듯 고층건물은 대개 인간의 탐욕에 비유된다.

 이 같은 고정관념을 부수려는 이가 바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세계초고층학회(CTBUH) 회장으로 당선된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학과 교수(60)다. CTBUH는 1969년에 초고층 건물의 디자인·구조·설비·운영·시공 등 관련기술 정보를 교류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전 세계 3209개 기관에서 38만7854명(지난해 기준)이 회원으로 가입한 세계 최대 초고층학회다.

 그는 고층빌딩이야 말로 오늘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고밀도 사회’에 인류가 남길 수 있는 문화유산이라 역설했다.

 김 교수는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중국의 자금성처럼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며 “예를 들면 노들섬에 건설한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 새로운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지론은 미국 유학시절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고층 빌딩을 구경 온 사람들과 우연히 만났다”며 “그들은 자기 주에 고층빌딩이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처음 상경해 들른 곳이 여의도에 있는 63빌딩 전망대였다.

 그래서 그는 “보다 사랑받는 빌딩이 되려면 사람이 산다는 주거공간의 특성에 맞춰 인문학적 감성을 녹여야 한다”며 “높이가 주는 위압감을 강조하기보다는 주변환경에 보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고층빌딩이 미래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고층빌딩의 모델이 기업과 편의시설, 그리고 주거시설을 모두 갖춰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가 되는 ‘컴팩트 시티’다. “분당신도시를 만든 이유는 서울로 밀집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지만,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해 서울과 분당을 오가는 인구 때문에 교통사정은 더 나빠졌다”며 “모든 것을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초고층 빌딩을 지어 기업의 입주를 유도해 컴팩트시티화(化)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제2롯데월드 건설 등 초고층 빌딩이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설계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우리 경제는 지금의 불황을 넘고 조만간 회복될 것이고 고층빌딩에 대한 수요도 다시 늘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초고층 빌딩의 미래적 가치를 인식해 과감한 투자에 나설 때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