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현상의 골프세상] 슬라이스 홀

[묵현상의 골프세상] 슬라이스 홀

 오른쪽은 산자락이고 왼쪽은 급격한 비탈로 돼 있는 홀에서 티샷을 준비하고 있노라면 “이번 홀은 슬라이스 홀이에요!”라고 자신 있게 외치는 캐디가 꽤 많다. 그러면 나는 항상 묻는다. “이 홀이 왜 슬라이스 홀이지요?”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똑같다. “이 홀에서는 슬라이스를 치시는 분이 많던데요?”

 이른바 말하는 슬라이스 홀은 △티잉 그라운드가 평평하지 않고 오른쪽이 살짝 낮게 비탈이 져 있거나 △티 마크가 오른쪽을 향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페어웨이 왼쪽에 OB가 있거나 해저드가 있어 티샷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밀어 때리는 일이 발생하는 홀이다. 이 세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홀에서 슬라이스 홀이라고 한다. 근거는 슬라이스를 내는 골퍼가 많다는 것이다. 티샷에서 슬라이스를 내는 골퍼가 전체의 80%쯤 되니 캐디가 내세우는 근거에 따른다면 모든 홀이 슬라이스 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캐디는 이 홀이 굳이 슬라이스 홀이라고 주장할까. 답은 뻔하다. 티샷한 공이 오른쪽 산자락으로 올라가면 등산을 하면서 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골퍼의 심리란 묘한 것이라서 일단 슬라이스 홀이란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슬라이스란 말이 각인되고 실제로 공을 때릴 때 정상적인 스윙이 불가능하게 된다. 캐디는 수고를 덜어보려고 슬라이스 홀이란 말을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자락을 뒤지고 다녀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라운딩을 나갔을 때, 미리 캐디에게 슬라이스 홀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괜히 머릿속에 나쁜 이미지를 넣고 티샷을 할 이유가 없어서다.

 이는 왼쪽에 연못이 있는 홀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야에 연못이 들어오면 자신도 모르게 연못을 의식하게 된다. 골프공이란 것은 참으로 희한하게도 티샷하기 전에 쳐다본 곳으로 날아가게끔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왼쪽 연못을 보고 나서 티샷을 하면 평소에 그렇게도 잘 치던 슬라이스는 어디로 가고 심한 훅이 걸려서 연못에 빠지고 만다. 이것을 역이용하면 좋은 티샷을 쳐낼 수 있다. 티샷을 하기 전에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멋지게 가르는 티샷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본다. 그리고 나서 티샷을 하면 공은 어김없이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가르며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