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북한의 SF

[SF 세상읽기] 북한의 SF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특수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가진 곳으로 지목되곤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마지막 분단국인 한반도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으면서 고도의 군사적 긴장 속에 무장하고 있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정권을 세습하고, 주체사상이라는 독특한 사상 체계를 만들어 국민을 통제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사회주의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체제 선전을 위해 SF를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동구권 국가와 소비에트 연방에서 SF가 국가의 통제와 체제 선전의 한계를 극복하고 과학과 문명을 포괄적으로 전망하는 풍요로운 결실을 만들어온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의 SF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문학의 길을 걸었다.

 북한 SF 문단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은 황정상이다. 황정상은 1988년 ‘푸른 이삭’을 써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93년 ‘과학환상문학창작’이라는 SF 비평서를 집필했다. ‘과학환상문학창작’은 남한과 북한을 통틀어 한반도에서 쓰여진 최초의 SF 비평서기도 하다.

 ‘푸른 이삭’은 북한 SF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1995년에는 남한의 출판사 ‘도서출판 한’에서 출간됐다. 이 작품은 ‘바다개발총연구소’를 무대로 여러 연구원(작품에서는 ‘연구사’로 지칭됨)이 서해 대륙붕을 땅 위로 들어올리려다 실패하지만,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바닷속에서 항암 성분이 있는 벼를 재배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비상한 두뇌와 열정을 가진 청춘 남녀 엘리트 연구원이 주인공이며 이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사랑의 엇갈림을 묘사한다. 등장인물들은 대단히 뛰어난 도덕심과 의지를 가진 전인격의 소유자로 그려지고, 이는 북한 지도부가 SF 문학으로부터 추구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북한의 SF 문학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연구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지닐 뿐 아니라 온갖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다.

 또 북한의 과학자들이 연구개발한 업적이 세계무대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되는 과정을 그려 국민에게 자국 과학 기술의 자부심을 고양시키고 더 나아가 북한의 사회 체제가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음을 부각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전통적인 문학의 관심 영역인 선과 악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인물 혹은 세상과 사회의 비난과 사색과 같은 소재들은 북한 문단에서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북한의 SF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북한 SF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스스로의 영달을 추구하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강한 충성심과 단단한 의지를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인물상은 사실상 북한 정권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상적 엘리트의 모습이다.

 북한의 SF는 최고 권력자의 비상한 관심과 국가 지도부의 적극적인 관여 속에 창작되고 있다. 황정상의 ‘푸른 이삭’도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직접 작품 심의를 받고 출간됐고 ‘과학환상문학창작’ 역시 국가 지도부가 작가에게 제시하는 SF 창작 지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홀로 고립된 채 오직 주체사상과 자주적인 경제 개발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는 SF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외국과 교류하기보다는 북한 내의 독자적인 노력으로 과학 기술 연구가 결실을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태영 공학박사, 동양공업전문대학 경영학부 전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