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이 싱그럽던 몇 년 전 4월 초순의 어느 날, 가까운 친구들과 오랜만에 내기 골프가 붙었다. 골프 실력도 엇비슷하고, 구력도 비슷해서 스크래치로 내기를 하던 친구들이다. 3번 홀까지는 큰 사고들 없이 파와 보기를 주고받으며 왔는데, 운명의 파 4, 5번 홀에서 줄 파를 해대던 조 사장이 티샷에서 토핑을 하고 말았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80야드쯤 나간 볼은 왼쪽 깊은 러프에 박혀 있었고, 티샷 실수를 일거에 만회할 요량으로 조 사장은 3번 우드를 꺼내들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귓속말로 다른 친구에게 “조 사장의 오늘 스코어는 볼 것도 없네. 저 정도 러프에서 3번 우드는 자살이야. 7번 아이언을 꺼냈어야지”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 사장은 또 토핑을 하고, 세 번째 샷에서 5번 아이언을 꺼내들었다. 이것도 아니다. 여기서도 7번 아이언을 뽑았어야 했다. 세 번째 샷도 토핑. 세 홀을 줄 파를 하던 조 사장은 여덟 번째 샷만에 간신히 제주도 온을 했지만 투 퍼트도 불가능한 거리를 남기고는 ‘양파 선언’을 하고 공을 집어들었다. 그날 조 사장은 104타를 쳤고 우리의 봉이 됐다.
조 사장은 80대 후반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한 번 무너지고 나니, 회복이 불가능한 멘털 해저드에 빠져버린 것이다. 워터 해저드는 1벌타로 막을 수 있지만, 멘털 해저드는 20벌타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날의 골프를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조 사장이 4번 홀 세컨드 샷에서 스푼만 뽑아들지 않았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여러분도 다 경험했겠지만 “양파는 스푼과 대단히 깊은 관련”이 있다. 아마 둘 다 먹는 것과 관계가 있어 그럴지도 모르지만, 파 5홀 세컨드 샷에서 스푼으로 때리다가 OB가 나서 양파를 하거나, 내리막 200야드 파 3홀에서 스푼으로 티샷을 하다가 슬라이스가 심하게 나서 양파를 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말 골퍼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로프트 13도 혹은 15도짜리 스푼을 발명한 사람을 미워한다. 아예 스푼이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내 스코어 카드에 양파가 없었을 것을….
조 사장 사건이 있은 후로 나는 원칙을 하나 만들었고 꼭 지키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티샷에서 ‘쪼루’가 난 홀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7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한다”는 것이다. 7번 아이언은 웬만하면 140∼150야드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파트너들이 티샷을 떨군 장소 근처에 보낼 수 있고 잘하면 세 번째 샷으로 그린에 올려 파도 노려볼 수 있는 찬스가 있다. 설사 그린에 못 올렸다고 해도 보기로는 막을 수 있는데 무리해서 스푼을 꺼내들면 그 홀을 망칠 뿐만 아니라 그날의 라운딩 전체를 망칠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로 골프 여행을 떠났을 때나 해외 전지 훈련을 갔을 때에는 한 라운드 스코어를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기간 내내 양파의 악령이 따라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