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우주항공 분야에서 농담처럼 회자되던 것이 “우주로 내보내는 것은 러시아가 최고, 안전하게 귀환하게 하는 것은 미국이 최고”라는 표현이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당시 러시아를 비아냥거리는 면도 없지않아 있지만 우주항공 분야에서 러시아의 기술을 인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항공 기술
러시아 정부의 발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타이타늄합금 및 초전도재료, 로켓 기술 능력은 미국·일본에 비해 우수하다고 설명한다. 우주항공기 제트엔진, 초대형 공작기계 기술 또한 상당히 뛰어나며, 제트엔진 성능은 세계 1위권이다.
러시아는 140개 이상의 위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광 전송분야 및 인공위성 발사기술 또한 세계 1위권이라고 주장한다. 항공기 관련 능력도 상당하다.
전투기·폭격기·요격기·공수항공기 분야에서 기존 항공역학·기계·군사용 및 성능은 러시아가 앞섰으나 전자관계 및 제어는 미국이 우위라고 밝혔다. 특히 재래식 조정계통(MIG-29, 저고도에서 뒤로 미끄러지는 기술)은 최고 수준이다. 수륙양용 비행기는 미국보다 우수하며 항공 관련 재료금속 분야와 소프트웨어 설계 분야, 항공기 조정 시뮬레이션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다목적 전투헬기 및 스텔스 헬기와 대형 헬기 제조기술 및 고성능·고효율 제트엔진, 관련 부품(블레이드), 마하 10엔진 핵심부품 개발 기술도 갖고 있다.
냉전시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던 국가들의 수장 노릇을 하던 러시아(당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는 미국과 자존심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우주 개발에 몰두했다.
우주항공 분야뿐 아니라 ‘첨단’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미국이 하면 러시아도 하고, 러시아가 하면 미국도 곧이어 시도하던 시대였다. 다만 1990년대 초반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후 국민의 생계가 국가 제1과제가 되면서 지난 20년 가까이 우주개발에는 힘을 못 쏟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역시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모라토리엄 등 환란의 시대에 우주개발 분야에 국가의 관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 항공우주국(나사)과 여러 나라에 원천기술을 가진 러시아 과학자가 상당수 유출됐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했던 푸틴 정부가 들어선 후 과학자의 해외 진출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 방지를 진행해왔다. 애국심과 높은 연봉을 내세워 해외에 나간 과학자들을 다시금 불러들이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다시금 우주항공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됐다. 한때 러시아에서는 우주 왕복선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부품을 싼값에 판매하는 곳이 등장했고,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한 우주항공 분야 과학자들이 기술을 응용해 자잘한 생계형 사업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약적인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세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주항공 분야가 자존심 경쟁이나 군사무기 분야로 응용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게 상품화돼 단기간에 막대한 국가 수입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에서 마케팅으로
러시아의 우주항공 분야 기술과 인프라는 우주항공에 눈을 돌리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 유용한 상품가치를 가진 원천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러시아는 그간 축적해온 노하우를 다른 나라에 전수하고 우주인을 훈련시키며, 발사기지 및 우주선이 없는 나라에는 발사기지 및 왕복선을 대여하며 수입을 올리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300억원 규모의 국가 예산을 쏟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탄생시킨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는 그간 중국과 인도 등에 우주항공 분야 공동 개발, 우주인 훈련 및 노하우 전수 등으로 꽤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런 러시아의 시도가 ‘우주관광’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우주항공 마케팅은 여타 국가들에 깨나 호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간 우주항공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거나 앞서가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힘쏟기보다 기존에 갖고 있는 기술과 인프라를 이용한 우주항공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또 우주관광 상품 외에 최근 러시아가 국가 예산을 대규모 투자해 가열차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글로나스(세계 위성항법 시스템)다. 글로나스는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 미국의 GPS에 대항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이자 시스템이다. 러시아가 여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EU의 위성항법시스템인 ‘갈릴레오 프로젝트(한국도 참여 중)’와 합작해 위성항법 시스템의 표준으로 인정받아 국가 수입원으로 삼기 위함이다. 역시나 국가 수입원과 연계된 프로젝트다.
손요한 블루비즈 기획실장 yohan.s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