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항상 주관적이다. 그래서 이른바 마음의 지도가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의 지도는 현실세계의 지형정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인간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는 숨겨진 변수다. 정보통신혁명은 현대인의 삶을 통제하는 마음의 지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현대인은 누구나 세계가 점점 축소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시공간이 줄어드는 증거는 지금 HDTV의 전원스위치만 눌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소파에 편히 앉아서 리모컨만 누르면 미국 대통령 취임식과 중동의 폭탄테러, 파리 패션쇼, 중국의 반정부 시위 등 지구촌의 실시간 영상이 섬뜩한 고화질로 쏟아진다.
모두 지구표면이 둥글다면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할 지구 반대편의 풍경이다. 현대인이 즐겨 보는 유리창(TV·모니터) 너머로 비치는 먼 곳의 풍경들은 처음엔 흐릿한 그림자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선명해지고 있다. 조그만 흑백TV는 큼지막한 컬러TV로 바뀌었고 요즘은 선명한 화질의 HDTV가 대세가 됐다. 머지않아 입체영상이 뜨는 3DTV도 실용화된다. 창틀 너머로 비치는 풍경의 종류도 폭발적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TV채널이 지상파 서너 개로 충분한 시절도 있었다.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의 확산으로 수백개 채널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IPTV와 UCC가 활성화되면서 세계 각지의 온갖 시각정보를 손쉽게 공유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다. 당신이 가만히 있는 데도 어렴풋이 보이던 먼 곳의 풍경들이 손에 닿을 듯이 다가온다면 세계가 그만큼 축소됐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멀리서는 흐릿한 숲의 윤곽만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숲을 이루는 온갖 나무와 들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현대인에게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착시현상, 심리적 시공간의 압축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착시현상은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대중의 시공간 감각을 왜곡시키는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언제나 둥글지는 않다
높은 산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은 커다란 원형이다. 옛날 사람들이 세상은 원반처럼 생겼다고 믿은 것도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납작한 원반모양의 세상에 사람이 살고 그 위에는 태양과 달, 별이 붙은 거대한 원형 지붕이 둘러쌌다고 생각했다. 인류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불과 500여년 전이다. 1492년 인도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 “지구는 둥글다”고 외쳤다. 둥근 지구에선 어느 방향이든 계속 나아가면 결국은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온다. 지구의 둥근 실체를 깨달은 유럽인은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고 곧바로 신대륙을 정복하는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유럽국가들이 지구본을 빙빙 돌리면서 세계 곳곳에 세력을 뻗치는 동안 아시아국가들은 뻥튀기처럼 납작한 세계관에 빠져 있었다. 그 결과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치욕의 역사를 경험했다.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지구는 둥그런 행성이며 둘레는 약 4만㎞라는 지리정보를 배운다. 그러나 컴퓨터만 켜면 지구표면의 온갖 풍경들이 주변에 다가오는 기묘한 착시현상을 느끼고 있다. 한국 PC방에서 미국, 일본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잡담을 나누는 것도 평범한 일상이다.
과거 지리시간에 배웠던 세계지도에는 이 같은 IT혁명이 초래한 세계관의 변화, 시공간의 축소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물리적 지구가 둥글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속에 떠올리는 세계의 모습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다. 뻔히 눈에 보이는 변화를 외면하면서 지구는 반드시 둥글다고 가르치는 행위는 깨나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오래전 조상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증거를 아무리 제시해도 좀처럼 믿지 않았다. 이쯤에서 우리는 IT혁명이 가져온 시공간 축소를 반영한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 바뀌면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도 달라진다. 21세기 지구가 어떤 형태로 바뀌는지 먼저 발견하는 국가는 과거 유럽인들처럼 미래를 여는 중요한 도구를 얻게 될 것이다.
△21세기의 세계는 오목하다
점점 축소하는 세계의 형상의 가장 유력한 가정은 다음과 같다. ‘세계는 점점 오목해지고 있다.’ 현대인이 느끼는 착시현상은 지구표면에 사과꼭지와 같은 구멍이 생기고 여러 국가가 블랙홀처럼 빨려든다고 가정할 때 가장 명쾌하게 설명된다. 과거 한국과 미국은 둥근 지구의 반대편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과 구멍(블랙홀) 속으로 빨려들면서 서로 뻔히 보이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오목한 지구모형에 세계지도를 접목하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체험할 시공간 감각의 변화와 원리가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심리적 시공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영향권에 가장 깊숙이 들어선 나라다. 세계 1위의 초고속 통신망을 갖춘 IT강국 대한민국은 이미 사과 구멍의 안쪽 경사면으로 빨려드는 상황이다. 건너편 언덕에는 북미대륙이 밀려 내려오고 있다.
EU, 일본도 꼭짓점 주위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그 뒤에는 중국과 인도대륙의 시공간도 천천히 붕괴되는 중이다. 사과처럼 구멍이 움푹 패인 지구본에다 마음의 세계지도를 그릴 때 지리적 근접성은 의미가 없다. 대신 시공간의 축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통신서비스와 함께 교통망, 문화적 친근함 등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서울과 평양의 직선 거리는 200㎞로 가깝지만 오목한 세계지도에서 찾아보면 서울과 도쿄(1160㎞), 서울과 LA(1만7240㎞)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바깥 장소에 있다. 폐쇄국가인 북한은 아직도 사과 꼭지에서 멀리 떨어진, 블랙홀의 영향권 밖에 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대도시가 블랙홀 안으로 먼저 빨려 들어가고 정보인프라가 낙후한 시골지역은 긴 꼬리를 형성하면서 뒤를 따르게 된다.
넓은 깔때기 모양의 블랙홀 속에서 축소하는 세계는 점점 크기가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작은 점으로 쪼그라들 운명이다. 늦어도 2010년대 후반이면 우리가 아는 문명국가 대부분은 사과 꼭지의 경사면 안쪽으로 빨려 들고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항구적 시각접촉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시공간을 빨아들이는 폭풍의 눈, 마침내 사과 구멍의 바닥에 도달하면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과 구멍의 깊숙한 곳에 다가갈수록 감각적 시공간과 현실세계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다. 시공간의 압축으로 서울과 뉴욕이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착각마저 든다. 당신과 나, 다른 수많은 사람의 삶이 동일한 시공간에서 중첩된다. 개인의 자아와 세계가 온전히 합치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오목한 세계의 깊숙한 바닥에는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편재성의 욕망이 구현될 새로운 시공간이 펼쳐져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서울과 뉴욕, 도쿄는 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동일한 시공간대에서 존재할 수 있다. 오목한 세계는 물리적 거리가 소멸된 미래사회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3D 모델이다.
◆둥글고 오목한 두 세계의 충돌
지구상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공간 개념이 존재한다. 끊임없이 축소하는 심리적 시공간, 다른 하나는 언제나 그대로인 물리적 현실세계다. 심리적 시공간이 압축될수록 현실세계와 괴리감은 커진다. 개인의 자아는 광통신망을 타고 전 세계에 빛의 속도로 퍼져간다. 허나 실존하는 육체는 초라한 PC방 한구석에 머무는 처지다. 서울의 기러기 아빠는 오늘도 전화기를 붙잡고 지구 건너편에 있는 가족들과 애틋한 상봉을 한다. 전화를 끊는 순간 기러기 아빠는 LA 교외의 주택가에서 튕겨나 다시 서울의 썰렁한 아파트 거실에 남겨진다. 자아의 끝없는 확장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세계의 괴리감은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두 세계의 괴리감과 충돌은 현대인이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면서 생활을 점점 바쁘게 만드는 원흉이다. 또 지구가 감당하지 못할 욕망과 소비성향을 세계화시켜 환경파괴를 부추기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심리적 시공간이 축소할수록 현실세계를 향한 개인의 꿈과 욕망은 더 높은 차원으로 격상된다. 서로 뻔히 보이는 좁은 세계에서 더 좋은 환경, 서비스, 상품을 향한 욕구는 끊임없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경기침체에도 국내 일류대가 아니라 미국 명문대학을 목표로 자녀의 해외유학에 기꺼이 재산을 탕진하는 부모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축소하는 시공간과 현실세계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이미 생존단계를 넘어선 중산층 이상 국민에게 삶의 만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이슈다. 점점 벌어지는 두 시공간계의 격차를 줄이려면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 소비가 뒤따른다. 요컨대 축소하는 시공간과 현실세계의 괴리는 GNP성장률과 상관없이 삶의 만족도를 끌어내리고 소비성향의 세계화를 부추겨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오목한 세계는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난 미래사회의 놀라운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21세기 인류문명의 지속성을 위해 극복할 과제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