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하드 SF

[SF 세상읽기] 하드 SF

 SF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단일 장르지만, 내부에서도 다양한 흐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SF를 여러 하위(서브)장르로 나누기도 한다. 하드 SF는 하위장르의 하나로, 간단히 말해 어떤 엄밀한 과학적 체계를 수립하고 그 체계 안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프트 SF’라는 용어가 있으나 기실 장르는 하나의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그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다. 다만 비슷한 성향을 가진 작품 또는 작가를 하나의 하위장르 안에 넣을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작가가 하드 SF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썼으나 하드 SF의 거장이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아서 클라크와 할 클레멘트가 있다. 아서 클라크는 장구한 스케일과 과학적 엄밀성에 기반한 상상, 그리고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로 명성이 높으며 우리나라에도 많은 작품이 번역돼 있다. 최근 그의 중단편을 총망라한 단편집이 출간됐다.

 할 클레멘트는 지구와는 매우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중력이나 대기의 조성과 같은 기본적인 조건이 달라졌을 때 생겨날 수 있는 행성의 환경과 그곳에 사는 생명체를 그리는 데 통달해 있다.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로는 극한의 중력을 가진 외계 행성과 그곳에 살고 있는 지적 생명체들을 그린 ‘중력의 임무’가 있으나 현재는 절판돼 구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이들의 뒤를 잇는 작가는 스티븐 백스터, 버노 빈지, 로버트 리드를 들 수 있다. 특히 스티븐 백스터는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구축한 장엄한 스케일과 엄밀한 과학적 세계관, 그 속에서 진화하고 분투하는 생명의 흐름을 그렸다는 측면에서 그랜드 마스터 아서 클라크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서 클라크가 과학에 기반을 둔 기술 낙관론 혹은 만능주의자였다고 한다면 스티븐 백스터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많은 하드 SF 작가처럼 과학만능주의를 배제하며 진보적 시각에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측면을 고찰하는 경향이 있다. 백스터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뭐니 뭐니 해도 질리(Xeelee) 우주에 기반을 둔 네 권의 장편과 한 권의 단편집, 그 외 수많은 단편 연작일 것이다.

 초고도 문명을 이룩한 질리라는 종족의 강력한 그림자 아래에서 인류를 비롯한 퀙스, 고스트 등 여러 독특한 종족의 흥망성쇠, 우주 전체 물질생명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반물질 생명인 포티노 새(photino bird)와 질리의 20억년에 걸친 투쟁을 배경으로 하는 질리 우주는 그 스케일과 가능성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들은 흔히 보이는 ‘피부병 걸린 인간’ 같은 외계인이 아니며 저마다 자신들의 환경과 역사의 산물로 독특하게 진화한 존재들이다. 또 질리가 만든 거대한 인공물인 초인력원(great attractor)과 이를 놓고 벌이는 인류의 사투는 전체주의와 맞물려 반전주의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백스터의 또 다른 관심사는 일종의 대체역사로서 우주 탐험이다. 현실에서는 아폴로 계획 이후 나사의 예산이 점점 삭감됐으나 백스터의 대체역사에서는 아폴로 계획의 성공 이후 역사는 우주개발을 거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러한 대체역사는 백스터의 개인적, 직업적인 관심사와 경험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생명의 운명(destiny of life)’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백스터의 작품은 개인이라는 개체가 아닌 생명 자체, 또는 인류나 매머드 등 생명 종의 진화와 운명을 다룬다. 생명은 환경의 변화, 강력한 적, 새로운 개척지, 시간의 흐름 등에 맞서 다양한 대응과 변화를 보여주며 이런 변화와 진화는 백스터 특유의 과학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그려진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독자는 백스터 작품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장편 ‘안티 아이스’가 번역되었지만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으며, 그 외에는 두 편의 단편이 번역됐을 뿐이다.

생명의 진화와 운명을 찾아서 - 하드 SF 의 세계 / 홍인수 조이SF iamin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