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업종인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는 장기적으로 한미 FTA를 훨씬 능가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동유럽 지역이 중국·중남미 등과 더불어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EU 주요 선진국이 일본·미국과 함께 기초 기술 강국인만큼 관세 철폐로 인한 눈앞의 실익을 넘어 핵심 부품·소재·장비 분야에서 합작 투자나 기술 제휴 등 보다 질적인 시너지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U는 이미 패널 수출 무관세 지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EU 역내에 판매한 평판 디스플레이 수출액은 68억8000만달러로 중국에 이어 두번째를 차지했다. 전세계 수출액의 21%를 웃도는 요충지다. 원래 EU가 디스플레이 제품에 매긴 관세율은 14% 수준. 하지만 EU는 역내에서 자체 생산 시설이 없는 일부 하이테크 품목에 대해 이미 한시적인 무관세를 적용해왔다. ‘듀티 서스펜션’ 제도다. 대표적으로 TV용 LCD 패널도 원래 14%의 수입 관세를 물어야 하지만 대상 품목으로 지정돼 지난해까지 무관세 혜택을 받았다. EU는 이를 2010년까지 연장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이번 한·EU FTA 타결 소식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LCD 모듈 공장의 경우 LG디스플레이가 폴란드 브로츠와프 지역에, 삼성전자가 슬로바키아 트라나바 지역에 각각 대규모 단지를 오래전부터 가동하면서 유럽의 전략적 생산 및 판매 거점으로 삼았던 터다.
장기적으로는 한미 FTA를 훨씬 뛰어넘는 효과가 예상된다. 미국운 이미 자국내 생산 기반이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간 반면, EU 기업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기지화하고 있다. 시장 규모면에서도 미국·중국과 함께 3대 거점이다. 주요 TV 세트 제품을 제외하면 한시적으로 적용되던 무관세 혜택을 FTA를 통해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업계의 기대가 남다르다.
한·EU FTA 체결에 따라 디스플레이 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일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가 수입하는 핵심 공정 장비와 기초 소재의 경우 EU 권역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원가를 낮출 수 있는 효과는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LCD 액정 업체인 독일 머크에서 들여오는 수입 원가는 무관세로 인해 가격을 낮출 수 있고, 일본·미국산 장비에 주로 의존하던 스퍼터 장비도 독일의 AFC 등으로 확대할 수 있다. 반대로 가뜩이나 취약한 국내 장비·소재 업체들의 기술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한·EU FTA 체결로 인한 단기적 혜택보다는 양자가 미래 시장을 위해 윈윈할 수 있는 수준 높은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발광다이오드(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의 다양한 합작·제휴 모델이 대표적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김현진 산업지원팀장은 “우리가 강점을 지닌 제조 경쟁력과 EU의 연구개발 기술력을 결합하면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양자간의 직간접 투자를 활성화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