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대형 TV·드럼세탁기 등 프리미엄 가전 개별소비세가 소비를 크게 위축시켜 이제 막 살아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전업계와 전문가들은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면 세금 인상분만큼 가전 제품 가격이 오르고 결국 이는 구매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줘 시장 자체가 크게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오히려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겠다는 본래 취지보다 시장 활성화에 악재로 작용해 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전업계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정부에 정식으로 건의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회장 윤종용)는 이미 조세연구원이 마련한 공청회에서 부작용이 크다는 주장을 밝혔으며 건의서를 위한 최종 의견을 수렴 중이다. 진흥회 측은 “아직 개별소비세 방침이 정식으로 확정된 사안이 아닌 만큼 시점을 보고 있다”며 “만약 조세연구원 원안대로 개별소비세 방침이 확정되면 진흥회와 산업계 명의로 건의서와 같은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개별소비세와 관련해 지난 1999년과 2004년에 이미 폐지된 ‘특별소비세 부활’이라는 면에서 제도 자체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체 조사 결과, 정부가 에너지 다소비 품목으로 꼽은 대형 TV·에어컨·드럼세탁기·냉장고는 국가 에너지 소비량의 1%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를 다소비 품목으로 지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소비량을 볼 때 가정용보다는 산업용이 대부분을 차지해 에너지 절감이 목표라면 산업용 부문에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업계는 이제 막 살아나는 경기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당혹감을 나타냈다.
경기 침체라는 상황에서 개별소비세를 도입하면 소비자 구매심리 위축과 저하로 연결돼 기업 쪽에는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가전 산업과 연관된 수많은 중소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과 달리 거꾸로 가는 정책 방향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중국은 가전 제품을 구입하면 보조금을 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에 이어 최근에는 노후 제품을 신제품으로 교체하면 보조금을 주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본도 경기 침체로 어려운 저소득층에 현금으로 보조금을 줄 뿐 아니라 대형 디지털TV를 구입하면 대당 2만엔의 보조금을 주는 등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장친화 정책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만 시장에 역행하는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셈이다.
가전업계는 에너지 다소비 품목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고 전기요금에 누진세를 징수하면 결국에는 소비자가 이중으로 부담하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덧붙였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업계는 지난 5년 사이에 냉장고는 60%, 에어컨은 40%가량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자체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경주해 왔다”며 “세수 증대 효과도 미미할 뿐더러 공산품이 과세가 용이하다는 특성을 활용한 조세행정 편의주의식 세수 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TV·냉장고·에어컨·드럼세탁기 4대 품목 대용량 제품에 한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