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 산업에서 핵심이 인력이라면, 인력을 키우는 ‘교육’은 SW산업 육성의 근간이다. 교육이 ‘학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SW는 ‘창의성’이 생명인 지식산업인만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기초 교육부터 산업현장에서 이뤄지는 교육까지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초 교육은 창의성과 사고력을 중심에 둔 교육이, 대학에서는 산업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틀은 비단 SW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SW가 산업이 주요 인프라가 돼 다양한 산업 발전을 이루는 것처럼 새로운 교육의 틀도 지식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SW 연중기획 ‘SW 글로벌 스타를 향해’ 5부에서는 △기초교육 △재교육△산학협동을 중심으로 SW 인재 교육 방안을 다룬다.
“호리병을 만들라고 하면 잘 만드는데, 왜 호리병 같은 구조가 필요한지는 궁금해 하지 않더군요. 세상에 호리병만 필요한 게 아니고 호리병 비슷한 게 필요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답을 구하기 힘들게 됩니다.”
10여년을 미국 SW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한 A씨의 한국 개발자에 대한 평가다. 현재 한 중소기업에서 연구소장(CTO)으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과거 친분이 있던 그 기업의 CEO가 권유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던 개발자들은 한국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하는 이들인데도 이른바 ‘기본’이 다져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수행 능력은 뛰어나지만, 어떤 이론과 함수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이다보니 그 이론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여느 교육분야처럼 컴퓨터 교육 또한 ‘주입식’ 위주로 진행된다. 입시 과목이 아닌 ‘컴퓨터’ 과목은 더더욱 교육의 고민을 담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정도만 가르쳐 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표 편집 프로그램이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 수업 모습이다.
그러나 논리를 가르치는 컴퓨터 과목이야말로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줄 수 있는 과목이라는 지적이다.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 활용 교육은 사고력 향상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할 뿐더러 단순 반복교육은 오히려 컴퓨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게 만들 수 있다.
◇알고리듬을 깨우치자=SW 강국인 미국은 초등학교에서조차 길이를 가르치면서 ‘1m=100㎝’ 라는 공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손 한 뼘의 길이를 재보도록 하고 기준이 각자 다를 수 있음을 인지시킨다. 그렇게 해서 왜 통일된 단위가 필요한 것인지 그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
단어 잇기를 비교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유치원 학생들의 단어 잇기 놀이는 주로 끝말 잇기다. ‘우산’ 다음에는 ‘산’으로 시작하는 어떤 단어가 나와도 좋다. 일종의 암기력 테스트다. 그러나 미국에서 ‘우산’ 다음 단어는 연상되는 단어다. 우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비옷’이 되기도 하고 손잡이 모양이 비슷한 ‘갈고리’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단적인 예로 교육 전체를 비교하는 것은 억지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우선에 두려는 그들의 노력이다. 그 결과가 SW 산업 강국을 만들어냈다는 업계의 결론은 지나치지 않다.
알고리듬이란 단순한 사실을 취합하고 처리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어떻게’에 해당하는 정보처리 방식이 바로 알고리듬이다. 활용하는 방식이나 코딩하는 방식보다 이 알고리듬을 얻어내는 교육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초·중등 컴퓨터 교육을 문제 해결 위주로 바꾸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초중고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람직한 컴퓨터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 이러한 교과과정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보다는 사고의 과정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가로 세로 각각 5칸이 있는 격자에 색칠을 해서 숫자를 그려 보세요. 그리고 까만 것은 0, 하얀 것은 1이라고 하고 각각의 숫자를 0과 1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기본 개념을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교과서의 내용 중 일부분이다.
지식경제부와 한국SW진흥원도 초중고교에서 컴퓨터과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2010년까지 새로운 SW 교육과정을 개발한다. 이 과정에는 모든 교육교재와 실습 도구로 공개 SW를 채택해, 학생들이 보다 쉽게 SW가 개발되는 과정과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대학교육도 바꾸자=공대에 입학하면 1학년들은 일반 수학과 물리, 화학 등을 배운다. 물리나 화학이 큰 관련이 없는 학과일지라도 대부분 이를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고를 다지는 기초 과정의 일환이다. 고등학교와는 접근 방법을 달리해 문제를 푸는 능력뿐 아니라 그 기초를 거슬러올라 증명해 내는 일련의 과정도 배우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이처럼 공학의 필수 교양 과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컴퓨터공학과와 전산학과 등의 학과뿐 아니라 전자공학과 같은 IT 관련 학과에서 이를 기초과목으로 삼게 되면 SW 개발자뿐 아니라 SW 저변을 넓히게 되는 계기도 된다는 것이다. 융합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SW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에서는 비단 컴퓨터공학과 전공자가 아니라도 컴퓨터 교육을 포함한 IT 교육을 종합적으로 받는다. 현장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대학의 몫이지만, 기초를 다지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대학의 역할이다.
석춘희 지주소프트 본부장은 “오랜 기간 동안 알고리듬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많은 학생들을 교육해왔다”며 “그렇게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구글이나 MS 등 해외 대표 IT 기업의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도 이 같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에 맞는 알고리듬 교육이, 대학생은 또 그에 맞는
알고리듬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