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클로즈업] 플라스틱 시티

[한정훈의 클로즈업] 플라스틱 시티

 ‘영혼이 묻힌 도시. 플라스틱 시티.’

 수목이 울창한 정글과 급속한 문명화로 거대하게 진화한 도시가 혼재하는 나라 브라질. 남부 상파울루 북쪽, 지구 반대편에 남겨진 아시아계 이주민이 주를 이루는 리베르다데 구역에는 그들만의 세계가 번성해 있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일본계 브라질인 키린(오다기리 조)은 어릴 적 아마존에서 양친을 잃은 후 유다(황추성)에게 발견돼 양자로 자라난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해 리베르다데의 대형 쇼핑몰 경영자이자 뒷골목 사회의 보스로 등극한 유다. 고집 센 그는 자신의 구역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사업가 미스터 타이완과 정치가 코엘료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하고, 어느 덧 그의 실각을 바라는 세력이 위협하기 시작한다. 상대의 비열하고 치밀한 공격은 동양인 거리를 주름잡던 유다의 왕국을 순식간에 함락한다. 비참해진 유다의 모습에 충격받은 키린은 자학에 가까운 집착으로 복수를 모색하고, 그의 파괴적 행동은 동료의 삶까지도 부숴버린다.

 영화 ‘플라스틱 시티’는 브라질 상파울루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혈연보다 강하게 맺어진 두 남자의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스타일리시 느와르다. 이 영화는 혼돈의 브라질 이민족 도시를 무대로 암흑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두 남자의 피보다 진한 깊은 인연을 그려냈다. 특히, 이 작품은 주연배우의 열연이 눈에 띄는 영화다. 주연은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로 지난해 한국에서도 이나영과 함께 김기덕 감독의 ‘비몽’ 주연을 맡았던 오다기리 조.

 그는 거친 뒷골목 세계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키린이라는 배역을, 전신에 문신을 그려 넣어가며 그만이 지닌 카리스마로 독특한 성적 매력과 아름다움을 풍겨내며 강렬하게 연기해 다시 한번 배우로서 새 경지를 개척했다. 위험한 지역과 정글 주변에서의 촬영을 포함해 브라질 올 로케이션을 감행해가며 오로지 포르투갈어와 광둥어라는, 두 개의 외국어로 도전한 그의 새로운 연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공동 주연은 ‘무간도’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으로 중화권이 자랑하는 명배우로 자리 매김한 황추성(유다)이 맡았다. 황추성은 정글의 오지에서 발견한 어린 키린을 아들처럼 길러내는 암흑 세계의 세력가, 유다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연기해 작품의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낭중지추라고 했나. 이런 뛰어난 작품성을 여러 곳에서 알아봤다. 촬영 완료 겨우 한 달 만에 편집본만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이 내정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연기 혼을 보여준 오다기리 조와 황추성은 물론이고 먼 남미 브라질까지 와서 고생한 수많은 아시아 스태프의 도전을 인정받는 순간이다.

 사실, 플라스틱 시티를 가장 먼저 주목하게 하는 것은 다른 영화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극도의 영상미다. 지아장커 감독의 소무, 장강애가(베니스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등을 촬영한 바 있는 유릭와이 감독은 대륙을 대표하는 촬영감독. 참신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을 포착하는 그만의 능력은 플라스틱 시티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특히,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도 전부터 욕심냈던 배우인 오다기리 조, 그리고 황추성에 대해서 감독은 “두 사람 모두 아시아의 남성배우가 보통 갖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신체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력이 넘치는 것과 동시에 동양적이고 강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메스티소(혼혈)의 거리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고 이야기하며 캐스팅 이유로서 두 사람의 외모를 크게 고려했음을 고백했다. 그의 선택에 보답하듯 그들은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매력을 과시한다.

 이들 매력적인 두 배우와 함께 관객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수천 가지 색깔로 반사하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매력이다. 촬영감독으로 지금까지 다수의 인상적인 광경을 영상으로 담아냈던 유릭와이가 포착하는 브라질의 모습은 엄중한 현실의 일면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어딘가 만화적이고 환상적이다. 정글의 벽을 넘어, 줄지어 늘어선 고층 건물들을 포착해 낸 오프닝의 공중 촬영 장면은 다양한 민족과 가치관이 혼재해 있는 브라질의 거리를 ‘플라스틱 시티-인공적인 도시’로 그려내면서, 일순간, 보는 이를 잔혹한 환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