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과 풍자를 양손에 들고 신문매체에 등장한 근대만화 이후 만화는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승만 정권 시절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의 권력을 풍자한 4컷 만화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처럼 시사만화는 늘 감시의 대상이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신문사에 ‘요원’이 상주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몇 번이고 만화를 다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만화가들은 검열의 칼끝을 피해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민주주의를 향한 메시지를 보냈다.
계몽과 풍자라는 만화의 오랜 전통은 디지털 시대 적극적인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21세기 새롭게 등장한 만화생태의 터전인 온라인은 ‘숙련’과 ‘전문성’의 높은 벽 대신 ‘공감’과 ‘참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인터넷 만화는 오랜 시간 연습일 필요한 출판만화와 달리 표현의 욕구만 있다면 누구라도 생산할 수 있고, 누구라도 게시판을 거쳐 유통할 수 있다.
이런 인터넷 만화의 낮은 진입장벽은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이미지 편집기(포토숍)의 보급이 확산되면서 더 빨라졌다. 온라인에서 많은 이들이 만화를 그리고, 유통하고, 소비했다. 그리고 열린 공간으로 계몽과 풍자의 힘이 넘어왔다.
온라인 만화가 지닌 파괴력을 처음 보여준 것은 2004년 3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인터넷 만화가 강풀의 발의로 시작된 ‘탄핵반대 만화’였다. 강풀의 홈페이지인 강풀닷컴(www.kangfull.com)에서 시작된 인터넷 만화가들의 탄핵반대 릴레이 만화는 게시판·블로그 등으로 퍼날라지며 ‘탄핵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온라인을 통한 만화의 사회참여의 두 번째 기록은 2008년 봄이었다. 한미쇠고기협정이 타결된 뒤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게시판을 타고 확산됐고, 촛불문화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 여러 만화들이 빠르게 생산됐다. 2004년에는 강풀 등의 인터넷 만화가들이 중심이 됐다면, 2008년에는 인터넷 만화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아마추어들의 작품도 속속 제작·유통됐다. 놀라운 자발성의 힘이었다.
헨리 젠킨스가 ‘컨버전스 컬처’에서 언급한 기존 미디어와 다른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작동, 디지털 민주주의의 문화적 형태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주의를 위한 포토숍의 세 번째 발걸음은 2009년 봄이었다. 여러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발의해 MB정권에서 추진하는 악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악!법이라고?’ 시리즈 연작을 제작, 책으로 출간했다. 지난 두 번의 사례가 작가들의 자발성으로 시작해 주로 감성적 영역에 호소하는 만화들이 다수였던 것에 비하면, 주제를 나눠 관련 전문가에게 자료를 받아 이를 만화로 만들어 책으로 묶은 이번 작업은 전과 다른 새로운 진전이었다. 참여한 작가들의 폭도 다양하다. 강풀·곽백수·김용민·박철권·야마꼬·주호민·현용민 같은 온라인 만화가들과 최호철·윤태호·최규석 같은 오프라인 만화가들이 한데 모였다. 책에 실린 모든 작품이 비슷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발 빠르게 문제에 대응하는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위한 포토숍의 힘은 여지없이 보여준 기획이었다.
이런 참여의 흐름은 지난 2일 1차로 200명이 넘는 만화인이 참여한 시국선언으로 이어졌다. 흥미롭게도 만화인 시국선언은 스크롤 방식의 만화로 구성됐고, 오프라인에서 기자회견으로 발표되는 다른 시국선언문과 달리 작가의 블로그·홈페이지·카페 등 온라인 공간에 게시되며 발표됐다. 민주주의를 위한 포토숍의 발걸음이 부쩍 빨라진 요즘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enterani@c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