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삼성이 지난해 7월 50년 동안 이어온 그룹 경영 체제를 계열사 독립 경영 체제로 바꾼 직후 찾아온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거센 파도를 무난하게 헤엄쳐 벗어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 2분기 노키아, 인텔, 소니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고전하는 동안 ’어닝 서프라이즈(깜짝실적)’를 보여줬고, 전기와 SDI, 테크윈 등도 흑자를 내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디지털이미징 등 일부 계열사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냈지만, 그룹 전체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며 가장 먼저 불황이라는 터널을 빠져나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삼성특검 수사에 대한 후속조치로 이뤄진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과 그룹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사장단협의회를 가동하면서 계열사가 각개약진하는 식으로 1년을 지내왔다.
올 2분기가 다 돼가도록 삼성전자가 올해 투자 규모를 확정하지 못하고 시장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때는 그룹 사령탑 해체와 오너 경영인의 퇴진에 따른 후유증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2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독립경영 체제는 합격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간판에서 ’적자의 주범’으로 추락했던 반도체 부문은 적자였던 1분기보다 9천100억 원 더 많은 영업이익을 내며 2천40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던 때와 비교하면 못미치지만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모두 적자를 낸 점을 고려하면 원가절감과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추진한 결과로 보기에 충분하다.
독립경영 체제 이후 삼성전자가 완제품(DMC)과 부품(DS) 부문으로 이원화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전자 계열사들이 사업 부문을 조정한 것도 불황 조기 탈출의 원동력이 됐다.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 진행된 이런 전자 계열사들의 ’외과수술’은 이건희 전 회장이 퇴임 전부터 구상해왔다고 한다.
곳곳에 이 전 회장의 그림자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일단 독립경영 체제는 적지 않은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투자와 마케팅은 과거 그룹 경영 체제 때와 달리 좀더 신중해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년 반도체 부문의 지속적인 투자로 세계 경기침체에도 흑자를 냈지만, 당장 올해 투자 규모는 작년의 절반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또 마케팅 부문도 실제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줄이기로 하는 등 ’관리 모드’를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룹 경영 체제의 강력한 리더십 대신 삼성 특유의 관리, 분석 경영 체제가 확고해지면서 위기를 넘기는 데엔 성공해도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역발상의 추진력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삼성의 실험은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금 체제가 완성된 경영 체제라고 할 수도 없는 만큼 더 성과를 지켜봐야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