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사고력을 중심에 둔 기초교육. 원리를 깨우치고 최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대학과정…. 소프트웨어(SW) 선진국은 교육부터 남달랐다. 인재가 제품 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SW 시장에서 우리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그러나 인재가 많은 나라라고 해도 그것이 바로 SW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글로벌 SW기업은 그들만의 강력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기초교육과 더불어 기업의 재교육이 탄탄한 인력 구조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 곧 SW의 경쟁력을 창출해 낸다.
같은 개발자라고 해도 어떤 기업에서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실력차는 확연하게 난다. 같은 전공을 하더라도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나가는지 하는 것도 해당 기업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곧 기업의 교육에 따라 개발자 실력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다. 글로벌 기업이 운영하는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거쳐 개발자들은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게 된다. 교육을 받으며 애사심을 키우고, 자기만의 고유 능력을 찾는 기회도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교육 프로그램은=러시아의 대표적인 컴퓨터 백신 SW 기업인 카스퍼스키랩. 이 회사는 전문가를 찾아 고용하기보다는 전문가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 기업이다.
러시아에는 악성코드를 분석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한 요인이 됐고, 또 이것이 결국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새로운 인력을 고용한 후 곧바로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이 프로그램은 10여년 전 카스퍼스키랩의 전문가들이 발굴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기술과 윤리교육 등을 포함해 3개월 정도 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투입되지만, 교육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이 교육은 철저하게 개인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신입사원에는 모두 멘토가 정해지고 개인관심과 능력에 따라 전문 분야가 결정된다. 모든 개발자들은 커리어 플랜도 만들어야 한다. 시스코·어도비·MS· 리눅스 등 외부 교육 프로그램도 활용하는데, 회사 내에서 매주 평균 두세 개의 트레이닝 강좌가 열린다.
오픈소스로 유명한 레드햇도 내부 교육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모델은 연간구매방식(서브스크립션)이다. 고객이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는 SW를 서비스로 이용하는 데 매력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24시간 365일 내내 고객 문의를 실시간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실시간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전문가들이다. 레드햇은 이 때문에 그 어떤 회사보다도 전체 직원 수 대비 엔지니어를 많이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한국레드햇 또한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오픈소스 전문가들로 이뤄진 엔지니어다.
이들 전문가도 교육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매달 셋째 월요일은 오전 8시부터 사내 교육이 있다. 2일 내내 받아야 하는 필수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또, 리더십, 매니지먼트, 세일즈, 테크니컬 각각의 분야에 10∼20개의 강의를 온라인에서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어도비는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기발한 결과물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어도비 직원들은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개발할 수 있는 ‘맞춤형 개인 개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최신기술과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기술뿐 아니라 지적상담 전문가까지 배치해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도비는 직원들이 비즈니스 관련 교육과정과 인증 프로그램을 위해 지급한 교육비·교제비, 기타 등록비 등을 매니저가 승인시, 한도 내에서 최대 100% 지원하고 있다. 직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스트레스 관리, 직원 간의 관계 문제, 질병, 신변(출산·유고·이직 등) 등 일상 및 직장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까지 개별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SAS는 최고의 개발 환경과 교육지원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구글조차 벤치마킹한 회사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직원은 입사와 함께 반드시 SAS 본사를 방문해 일정 기간동안 교육을 받으며, 이어 SAS에서 근무하는 내내 온라인 트레이닝 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SAS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고 이직률이 낮은 것은 이 같은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 때문이다.
◇국내 환경은=지난 달 전자신문사가 한국SW기술진흥협회와 함께 벌인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42%의 개발자들이 앞으로도 개발 업무에 전념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컨설팅과 SW 관련 사업을 희망하는 개발자까지 합하면 SW로 미래를 개척하고 싶어하는 개발자들은 80% 이상이었다. 이들이 평생 SW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나가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면 적어도 인력 부족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유독 프리랜서가 많은 국내 SW 산업의 인력구조를 바로잡는 데도 사내 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글로벌 기업들이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를 통해 강조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은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비전까지 공유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개발자에게도 교육과 자기계발 기회는 당장 급여가 높은 프리랜서보다 기업 소속을 선호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외부 파견이 많고 야근이 잦은 국내 SW산업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업무처럼 필수사항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인력양성 정책도 재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현재 고용계약형 석사과정과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에 지식경제부는 각각 30억원씩 예산을 배정해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에 더해 예산을 10억∼20억원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학의 교과과정을 혁신하고 산업계와 재교육을 위한 협력을 특화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이종배 지식경제부 사무관은 “노동부와 중기청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초급 인력 양성에 초점을 두고 지식경제부는 차세대 SW인력을 키워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SW 인력의 수준을 재교육으로써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중요 지원 사업”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