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으로 금융업종간 벽이 허물어지면서 금융사 간 고객 쟁탈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에 최근 많은 금융사들이 ‘고객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전략적 도구로서 IT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은 그 중에서도 핵심 도구로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금호생명은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잠재 고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CRM 시스템(시스템명:KISS)을 전면 재구축했다. 기존 시스템의 경우 영업스케줄 관리와 고객 기념일 정도를 알려주는 수준이었다. 사용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시스템이었지만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실질적으로 영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호생명 CRM팀 오완교 차장은 “단순 상품판매를 위한 목적이 아닌 고객 충성도를 향상시키고 회사의 영업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CRM 시스템을 다시 개발하게 된 것”이라며 “특히 영업 현장에 있는 재무설계사(FP)와 관리자의 활동을 시스템을 통해 좀 더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분석CRM 보다는 운영CRM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집중 개발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금호생명이 CRM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바로 ‘현장의 목소리’다. 실제로 시스템을 사용하게 될 관리자와 FP를 직접 찾아가 물어보고 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설계했다.
금호생명은 전국 22기관 관리자 100명과 FP 420여명의 의견을 모아 기본안(화면)을 만들고 최종 과제를 도출했다. 무려 5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 이 작업은 12년 동안 영업 현장에 근무했던 오완교 차장이 서투른 솜씨지만 직접 그렸다. 그 당시 그렸던 화면만 240여 개나 된다.
금호생명은 일부러 벤치마킹 대상도 두지 않았다. 대형보험 3사의 영업활동이나 고객관리 방법이 정답일 수 없다는 판단하에서다. 자사의 관리자와 FP들이 가장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셈이다.
오 차장은 “회사의 문화나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시스템이나 솔루션보다는 당사의 영업 현장에서 정답을 찾고 싶었다”며 “타사의 시스템을 먼저 보게 되면 머릿속에 화면의 잔영이 남아 그것을 본떠 만들게 될 것 같아 일부러 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금호생명측은 기본 설계를 다 마친 후에야 타사 시스템을 비교 참고 하는 수준에서 검토했다.
◇고객 정보를 한 화면에 넣다=금호생명은 한 화면에 고객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도록 했다. 이는 자사 사용자들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다. 기본 고객정보와 함께 접촉 이력, 서비스 및 지급 이력, 콜센터 등의 상담 이력까지 모든 것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보험에 가입한 후 보장받을 수 있는 담보별 급부현황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오완교 차장은 “권한별로 볼 수 있는 범위는 다르지만 FP가 고객을 만나서 컨설팅하기 위한 가입설계, 청약에 대한 내용은 물론이고 고객을 만나고 난 후의 결과까지도 통합해 보여주고 있다”며 “200개가 넘는 기능 중 현재 FP는 100개 정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호생명은 이번 CRM 시스템에 ‘영업 6단계’를 자동화시켜 영업기회 프로세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는 국내 보험사 중 최초로 구현한 것이다.
△고객등록 △영업기회 등록 △고객접근 △정보수집 △요구수집 분석 △계약체결 단계 등을 자동으로 FP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관리자가 FP들의 활동 정보를 보고 코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말일자 자동이체 결과도 수금마감 당일에 계약, 입금 등의 내용을 시스템에 바로 반영해 유지율이나 기타 고객관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작업은 워낙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영역이기도 했다고 금호생명측은 말했다.
이 외에도 금호생명은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지원하기 위해 ‘원클릭시스템’을 개발해 SMS, 전자우편, 도서, 판촉물 등을 쉽게 발송할 수 있도록 했다.
◇지속적 고도화 추진=금호생명은 1년 정도의 개발 기간을 거치고 난 뒤 2007년 3월 시스템을 오픈했다. 시스템 오픈 이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구축 당시 고객 한 명당 FP 한 명이 전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했다. 한 회사에서 한 명의 고객에게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고객정보보호 차원에서도 이런 일대일 관리 정책이 옳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사용자들도 인정했지만 실제로 오픈하자마자 영업 현장에서 거세게 항의가 들어왔다. 결국 전 프로그램에 걸쳐 일대일 관리라는 틀을 깨고 일대다 관리가 가능하도록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오 차장은 “일대일 정책의 경우 실제 영업현장에 당장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었던 영역이었던 점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시스템 변경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해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금호생명은 지속적인 변경 관리와 업그레이드 작업을 통해 CRM 시스템을 진화시켜 왔다. 시스템 오픈 6개월 후 일일 사용자 3500명을 기록했으며 현재는 일일 5000여명이 사용하고 있다. 고객등록 건수도 월 4만명에서 월 12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CRM을 통한 고객접속 건수도 월 8만건에서 33만건으로 늘었다.
현재 금호생명은 ‘멈춰있는 시스템은 사용자에게 외면당한다’는 철칙하에 CRM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 오는 하반기에는 영업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기능과 대시보드 기능, 고객접촉이력통합시스템 등을 추가할 계획이다. 나아가 단순한 고객세분화나 정형화된 영업실적분석이 아닌 온라인분석처리(OLAP) 기반으로 사용자가 쉽게 분석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미니 인터뷰>
금호생명 고객관리팀 오완교 차장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했던 기능은.
▲한마디로 영업과 고객관리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프로세스가 시스템에 반영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업 6단계를 시스템에서 FP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보험의 경우 유지율 관리가 중요하다. 보험은 한번 납입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월 수납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능을 요구했다. 이 부분의 경우 구축 업체들이 보험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
-업체 선정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업체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우리는 단순 영업지원시스템이 아닌 제대로 된 CRM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는 업체가 필요했다. 4개 업체가 경쟁했는데, 우선협상자였던 업체의 경우 재정설계, 가입설계, 청약업무에는 탁월했지만 CRM 측면에서는 약간 부족했다. 결국 CRM 관련 업무는 2위를 차지했던 UBCNS가 맡아 진행했다.
-유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기업들에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
▲다른 회사가 성공했다고, 선진사의 시스템이라고 해서 자사에 적용했을 때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문화나 조직원 특성 그리고 고객이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업 담당자의 충분한 고민과 이해를 바탕으로 관련 요구사항을 시스템에 반영하겠다는 열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용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