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시간여행물의 의미

[SF 세상읽기] 시간여행물의 의미

 ‘타임리프’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소녀는 갑자기 자신의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다.

 일요일에 잠들었는데 어느새 화요일이 돼 있는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두려워하던 소녀는 누군가에게 상담하고, 이야기를 듣던 소년은 이렇게 묻는다. “넌 대체 어디서 라벤더 향기를 맡았는데?” 누구나 뜬금없다 생각할 만한 질문이지만, SF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비교적 쉽게 이 내용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관련된 질문이라는 것을….

 일본 SF의 3대 명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쓰쓰이 야스타카의 이 작품은 언제부턴가 라벤더 향기를 맡은 후부터 때때로 시간을 거슬러가는(시간을 넘어가는) 능력을 갖게 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여학생이던 주인공이 능력을 이용해 위기를 헤쳐나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른 작품에서조차 아무런 설명 없이 ‘라벤더 향기’라는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이 작품이 잘 알려졌다는 사실이 아닐까.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오랜 세월 동안 SF에서(한편으로는 판타지에서도) 인기 있는 주제로 눈길을 끌어왔다. 그 내용도 다양해서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개과천선을 위해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줬고, H G 웰스의 ‘타임머신’에서 단순히 미래 세계를 보여주는 소재였던 시간 여행은 이후 여러 작품을 거치며 ‘역사의 변혁’이라는 가능성과 역사를 바꾸고자 애쓰는 이들의 모험담을 담게 됐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역시 역사를 바꾸는 내용을 소재로 한 시간 여행물이다. 이들 작품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향해 좀 더 좋은 미래를 만들거나 반대로 역사를 바꾸려는 누군가에 대항하여 현실을 지켜나간다.

 시간 여행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을까. 웨스트우드의 ‘적색 경보’라는 게임에서는 타임머신을 개발한 아인슈타인이 히틀러를 없애버리지만, 그를 대신해서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유럽을 지배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시간 여행이란 것은 얼핏 만능처럼 보이지만,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들 작품은 보여준다고 할까.

 한편,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말이 나오기도 한다. 여자친구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간 주인공은 악동 친구들로부터 겁쟁이라는 말을 듣고 경주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주인공은 뒤로 물러나는데, 잠시 후 자신이 달려가던 곳에서 고급 자동차가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만일 그대로 경기를 계속했다면 큰 사고가 났을 것은 뻔한 일…. 주인공의 현명한 판단이 지금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구한 것이다.

 이렇듯, ‘타임머신’에서부터 ‘터미네이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간 여행 작품이 존재하지만-테마 파크 분위기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같은 작품을 제외하면-그 어떤 작품에서도 시간 여행은 완벽하지 않다.

 맘대로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시간 여행 작품에서조차 여러 가지 함정과 제약이 있다는 것은, 결국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만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하루가 영원히 반복되는 작품 ‘사랑의 블랙홀’에서 자신을 소중히 하고 주변을 위해 노력하게 된 주인공이 영원한 ‘오늘’에서 벗어나 희망찬 ‘내일’을 손에 넣었듯….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 sflib200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