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원화 강세에 `희비 쌍곡선`

금융 위기의 진정 기미속에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원화 가치가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산업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자, 자동차처럼 상반기 예상 외로 좋은 실적을 내는데 고환율의 덕을 본 업종들은 “원화 강세에 대비하고 있다”면서도 사전 대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반면, 재료를 수입한 뒤 국내에 제품을 주로 공급하는 철강, 식품업계나 원화 약세로 어려움을 겪었던 항공업계 등은 내심 원화 강세를 반기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이에 비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유가에 대해서는 대다수 기업들이 업종을 불문하고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작년 수준까지 오르겠느냐”며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이다.

◇ 석유화학 “걱정”, 전자.車 “끄덕없다”지만.. = 1분기 한 때 1,500원대에 이르렀던 원.달러 환율은 국내 경제의 안정과 경상수지 흑자 등에 힘입어 꾸준히 내려 지난 7일에는 1,255원까지 하락했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연말로 갈수록 환율이 더 내려 4분기에는 1,150원대까지 밀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배럴당 36달러까지 급락했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도 7일에는 배럴당 71달러대까지 두 배로 치솟았다.

환율과 유가에 가장 민감한 산업은 역시 석유화학 및 석유제품업종이다. SK그룹의 경우 유가 상승시 SK에너지와 SK케미칼 등 계열사들의 원가가 높아질 수 있어 경영계획을 1∼2개월 단위로 짜고 있다. 환율에 대해서도 연초부터 그룹 경영에의 영향을 분석하는 ’환율 대책반’을 가동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원유가격 변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가격 등락에 따라 구매시점 및 구매량을 조절하는 한편, 원유구매 대금 및 제품수출 대금의 발생시점을 일별로 파악해 위험발생 즉시 선물환을 통해 헤지(hedge.위험분산)함으로써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분기 6천603억 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던 LG화학은 하반기에 유가 상승 및 환율 하락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2분기 ’깜짝 실적’을 낸 전자업계는 “큰 걱정은 없다”면서도 환율 동향을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실적 자체가 상당부분 환율효과에 기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2분기 1,040원 안팎이었던 환율은 올 2분기 200원 가까이 오른 1,200원 선에서 움직였고 엔고까지 겹치면서 소니, 샤프 등 일본 경쟁업체들이 고전한 것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공장이 전 세계에 분산돼있고 거래통화도 다양하기 때문에 환율 불안으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하반기에 환율 불안이 닥친다면 올해 2분기보다 실적이 나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환율 하락이 반갑지는 않지만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은근히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환율 변동폭 심화에 대비해 저환율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원가 절감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출 비중이 75∼80% 가량을 차지하는 이 회사는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2천억 원 가량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본다. 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환율 폭등으로 얻은 환차익의 대부분을 해외시장 개척비로 투입해 상반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5%까지 높인 바 있다.

현대차가 미국과 인도, 중국 등 5곳에, 기아차가 슬로바키아와 중국 등 2곳에서 해외 공장을 운영하면서 현지 생산을 하고 있는 점도 환율 리스크를 줄여주는 경영전략으로 꼽힌다.

유가 상승은 자동차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연비가 우수한 차량을 시장에 내놓아 대응하겠다는 게 현대.기아차의 전략이다. 지난달 아반떼 및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 차량을 출시한 데 이어 내년에는 하이브리드 기술이 적용되는 차종의 범위를 중형차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1분기 고환율 덕에 ’일본 관광객 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유통업계도 원화 강세가 반갑지 않은 업종으로 꼽힌다.

◇ 항공.철강.식품 “원고(高)야 어서 와라” = 항공업계는 최근 환율 하락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원화 가치가 올라가므로 하반기 항공기 이용객들이 더욱 늘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율 하락시 달러로 지급되는 항공기 리스료나 유가 등 비용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올 초 연평균 환율을 1,200원으로 설정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연평균 환율이 10원 내리면 각 200억 원과 178억 원의 비용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유가가 강세지만 작년 수준에 이르지만 않으면 유가가 다소 올라도 환율 하락으로 상쇄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출국이 늦춰졌던 해외여행 대기 수요가 지속적인 환율 하락으로 꿈틀거리자 여행업계도 반기는 분위기다. 하나투어의 경우 7월 모집 여행객 수가 작년 동기 대비 -13%였으나, 지난 7일 현재 전년 동기 대비 예약률이 -10%로 감소율이 줄었다.

특히 환율이 1,100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최근 여행 출발 예약이 늦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다 오랜 장마로 여행 시기를 내달로 연기한 대기자가 많은 점 등을 감안하면 이달중 작년과 비슷한 수준까지 예약이 증가할 것으로 이 회사는 보고 있다.

항공,여행 업계가 아니라도 원고가 반가운 산업은 또 있다. 밀가루, 설탕 등 원료 수입 비중이 큰 CJ제일제당은 지난 1분기 환율이 치솟으면서 외환 관련 손실이 780억여 원에 달했으나 환율 안정으로 2분기에는 환차손이 대폭 줄었다.

제철업체인 포스코는 기본적으로 ’원화강세 수혜주’로 분류된다. 원료인 철광석과 유연탄은 수입에 의존하는 반면, 매출에서 2대 1 정도의 비율로 내수가 수출보다 크기 때문이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원료 수입비는 줄어드는 반면, 수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은데다 세계 최고의 원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피해가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회사는 원료 수입과 제품 수출에서 발생하는 손익의 균형을 맞추는 경영전략을 전통적으로 추구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원료가가 급등하면서 원화 강세시 발생하는 이익이 좀 더 큰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