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컴퓨터 사이언스와 SF 작가

[SF 세상읽기] 컴퓨터 사이언스와 SF 작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문자 메시지와 채팅, e메일을 이용한 업무 처리와 대인 관계 유지는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휴가를 가더라도 휴대폰을 들고 가고, 출장길에서도 인터넷으로 개인 e메일을 체크하고 관심 사이트의 게시판을 확인한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채팅으로 이루어지고, 문자 메시지로 사랑을 속삭인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급속도로 바꾸어 놓을 것을 가장 먼저 예측한 것은 역시 SF 문학이었다.

 윌리엄 깁슨이 1980년대 초 ‘뉴로맨서’를 발표했을 때, 사이버 스페이스의 미래를 제시한 그 비전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정작 윌리엄 깁슨 그 자신은 ‘뉴로맨서’를 쓸 때만 하더라도 컴퓨터에 철저히 문외한이었고, 그저 상상력과 펜만 가지고 사이버 스페이스의 미래상을 실감나게 그려냈을 뿐이었다. 물론 윌리엄 깁슨은 지금도 SF 문단에서 대가로 대접받고 있긴 하지만, 역시 그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고 그가 쓴 최근작들은 그렇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 깁슨 이후 사이버 펑크, 컴퓨터 사이언스에 관련한 SF물은 봇물 터지듯 쓰이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SF를 써낸 상당수의 작가는 그 자신이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자이자 컴퓨터 마니아고, 심지어 해커기도 하다.

 최근에는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가 구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개개인의 사용자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아바타(Avatar)로 자신의 모습을 대신하고, 이러한 아바타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대화하고, 회의를 진행하며, 거래를 성사시킨다. 이미 어마어마한 현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컨드 라이프의 세계를 실제로 구현한 린드 랩(Linden Lab) 사(社)의 창립자 필립 로즈데일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닐 스티븐슨의 기념비적인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닐 스티븐슨은 그 자신이 해커에 가까운 컴퓨터 광이며,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컴퓨터 사이언스와 암호학, 그리고 사이버 스페이스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전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닐 스티븐슨은 ‘크립토노미콘’에서 2차대전 당시 적군의 암호를 풀어내기 위한 경쟁을 거쳐 오늘날 컴퓨터의 발전을 가져온 선구적인 엔지니어들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컴퓨터 광들을 위한 멋들어진 대하드라마를 선사했고, ‘다이아몬드 시대’에서는 사이버펑크의 시대를 넘어 나노 테크놀로지의 시대로 가는 새로운 인터랙티브한 가상 세계의 영향력을 한껏 펼쳐 보였다.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의 SF 작가 중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는 찰스 스트로스가 있다. 이 작가는 본래 전산을 전공하고 관련 업무를 해오다가 전문 컴퓨터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종종 컴퓨터 사이언스의 극한을 파고드는 작품을 써내곤 한다. 단편 ‘항체’는 이러한 작가의 전공 지식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NP-Complete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세상의 많은 난제를 한꺼번에 다 풀어내어 버릴 수 있게 됐을 때 발생하는 혼란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테마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거나 이산수학 또는 알고리듬 방법론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독자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해하기조차 어렵지만 찰스 스트로스는 전문 지식을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풀어가고 있고, 그것을 통해 경이감을 고취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작품이 태연히 창작되고 또 독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읽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회의 과학 기술에 대한 지적 역량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태영 공학박사, 동양공업전문대학 경영학부 전임강사 tykim@dong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