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소프트웨어(SW) 기업 육성을 위해 도입된 각종 발주 제도가 ‘통합발주’ 때문에 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관 내 여러 정보화 사업을 통합해 발주하는 형태부터 다른 기관 사업까지 한꺼번에 통합하는 형식의 발주가 나왔다. 또 SW 분리발주도 정보화사업에서 SW만을 전부 분리하고 이를 다시 통합해 발주하는 형식의 ‘통합 SW 분리발주’도 진행됐다.
우정사업본부는 60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건전성관리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종합수익관리시스템·보험사기방지시스템·자금세탁방지시스템 등 세 가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이 사업이 개별 발주됐다면 20억원 미만의 사업이 됐겠지만 통합하면서 대기업 참여 하한을 넘어서게 됐다.
국토해양부·지식경제부·관세청은 △2차 국가물류 통합정보센터(2차) △글로벌 첨단 항만 물류 정보망(1차) △전자무역 신규 서비스 구축 및 확산 △글로벌 통관 표준 공급망 관리센터 구축(1차) 등에 관한 사업을 하나로 통합한 계획서를 사전 공개했다. 다양한 사업이 묶인데다 서로 다른 발주자까지 섞여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통합 SW 분리발주도 중소기업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개의 SW를 8억4000만원의 예산으로 한꺼번에 발주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디지털방역체계 구축을 위해 필요한 19개 SW를 4개 부문으로 나눠 발주했다.
통합발주는 대기업 참여 하한 제도나 SW 분리 발주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다. 지식경제부 고시에 따라 연 매출 8000억원 이상 대기업은 40억원 미만의 공공 SW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통합발주를 하면 사업 규모가 커져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통합 SW 분리발주도 중간사업자가 있어 중소 SW기업들의 이윤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발주자의 선택권도 제한되기 때문에 품질 중심의 발주도 힘들어진다.
하지만 통합발주를 제한하는 규정이나 지침은 찾아보기 힘들다. 통합의 기준이 불분명해 규정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리발주는 업무 부담이 배로 늘어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업계는 관할 부처가 직접 나서서 통합 발주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통합발주를 막아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임희석 한국소프트웨어전문기업협회 팀장은 “규정을 만들기 힘들다면 정밀한 모니터링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또 모니터링을 하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강제할 수 있는 보완책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