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주식회사(이하 대상)는 최근 3년간 공급망관리(SCM) 혁신에 중점을 둔 프로세스혁신(PI)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해 왔다. 핵심 목표는 빠른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는 것이었다. 대상은 3년간의 속도감있는 PI 활동에 힘입어 올해를 기점으로 주 단위 생산 계획을 주 2회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내년을 본격적인 성장의 해로 정하고 그동안 PI 활동으로 축적해온 체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해외 법인 IT 인프라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계획대로 실행하자’=현재 대상의 모든 제품군은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판매생산계획(S&OP) 회의를 통해 모든 생산및 판매 계획이 수립된다.
식품군의 경우 조미료류, 장류, 레토르트류, 홍초류 제품군으로 구분된 4가지 카테고리관리그룹(CMG)별로 담당자들이 모여 SCM실 주관으로 차주 판매·생산 계획을 수립한다. 장류 제품군은 비교적 안정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레토르트 제품의 경우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이처럼 제품군마다 다른 유통 특성을 감안해 각 제품군 판매·생산담당자들이 모여 각각 생산·판매 전략을 세운다.
대상의 이같은 주 단위 판매생산(S&OP) 회의는 2006년 6월부터 전사적인 PI 활동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PI는 조직 문화에 새 옷을 입혀 빠른 의사결정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SCM 혁신과 맞물려 진행됐다. ‘계획대로 실행하자’는 슬로건을 내건 박성칠 대표(당시 고문)가 여기에 큰 힘을 실었다. 이 슬로건에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좋은 계획과 강력한 실행력이 동반돼야 하고 이 계획 주기를 단축하면 명실상부한 ‘빠른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대상은 PI 활동 초기부터 빠른 시장 대응과 재고감축을 위해 기존 월 단위로 진행하던 판매 및 생산 계획을 주 단위로 대폭 단축했다. 주 단위 S&OP 회의를 통해 영업부문과 생산부문간 정보를 공유하고 정확한 수요예측에 기반해 생산계획을 반드시 엄수하는 등의 조직 문화 혁신도 함께 추진했다. 27개의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해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관리 체계도 확립했다.
대상이 SCM과 맞물린 PI 활동을 위해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3일 확정체제’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도입했던 방식을 식품기업에 최초로 적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번 주 회의로 결정된 차주 월, 화, 수 생산 물량은 절대 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주문한 만큼만 생산하는 체제를 통해 제품 생산을 위해 조달되는 엄청난 양의 자재수급까지 예정대로,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체제가 가능하려면 기존에는 습관처럼 이뤄지던 생산계획 수시 변경이 일체 금지되기 때문에 정확한 수요예측 능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빅뱅 수준의 체질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 ‘상황이 급하게 됐으니 조금만 더 생산해 달라’는 식의 임시 주문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초창기 이곳 저곳에서 볼멘 소리도 터져 나왔다. ‘제품 특성과 유통 방식도 다른 식품 기업인 우리가 삼성처럼 할 수 있겠는가’ ‘제품 가짓수가 많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방식이다’는 지적이 대표적인 불만이었다. 그러나 사업 분야는 달라도 PI의 필요성은 같다는 점을 공감하는 직원들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서로 남 탓을 하던 영업과 생산부문간 반목현상도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노장섭 혁신추진팀 차장은 “주기적인 변화관리 교육과 매달 발행되는 사보를 동원해 3일확정체제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교육했다”면서 “별도 ‘SCM 데이’를 정해 지점별 영업 담당자들이 모여 S&OP의 고충을 토로하는 등의 이벤트를 벌이는 등 전 사원의 참여와 의식변화를 이끈 결과 빠른 시간에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대상은 이런 변화를 업무적으로 체질화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노 차장은 “PI 활동이 ‘PI본부가 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하라면 현업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현업을 대상으로 지속적 홍보를 함으로써 이런 혁신 내용들을 자신의 업무화하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연내 주 2회 계획 체제로 전환=대상은 PI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1년 만인 2007년 4월 APS(Advanced Planning & Scheduling)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관련 IT인프라를 도입했다. APS는 공급망 효율화를 지원하는 계획수립 최적화 시스템이다. 수요관리를 통한 생산계획 수립으로 재고를 최적화하겠다는 목표였다.
공급망관리 솔루션 업체인 i2테크놀로지의 APS 솔루션을 통해 수요관리(DM), 공급망계획(SCP), 후보충계획(RP) 등 3개의 모듈을 순차적으로 구축했다. 각 모듈 구축에는 한 달씩 소모됐다. 다른 기업이 6개월 동안 컨설팅을 받는다는 APS 구축 프로젝트를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완료하고 그 해 6월 1일 시스템을 오픈했다. 설령 100%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80% 수준에서 시스템을 가동하고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보완·수정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긴 프로젝트 기간 동안 간과할 수 있는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말자는 박성칠 대표의 ‘스피드’ 정책 덕이다.
대상은 이렇게 SCM 혁신으로 강력해진 수요예측력과 APS를 통한 판매량 예측을 기반으로 ‘3개월 추정손익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3개월치 손익을 미리 계산하고 영업이익까지 추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과학적인 예측 기반 영업체제를 지원하고 있다.
또 올 2분기 초부터 해외 법인과 대상F&F 등 각 계열사에 APS를 구축하는 2단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노 차장은 “2010년에는 글로벌화와 차별화를 통한 매출성장을 목표로 하는 만큼 해외 법인 APS 확대와 글로벌 ERP 통합 등을 통한 글로벌 IT 인프라 확대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기존의 틀을 버리고 지난 3년간 새로운 조직문화를 심고 변화해 온 강력한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내년 이후 매출 성장을 현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성 개선을 위해 주로 공장에서 적용되던 TOP(Total Operational Performance) 혁신 활동을 영업현장까지 확대하는 등의 적극적 원가 혁신 활동도 가속화할 계획이다.
현재 대상의 주요 공급망 혁신 과제는 수요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면서도 갑작스런 시장 요구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계획을 세운 후 긴급 주문을 반영해 다시 한번 생산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대상은 그동안 노력해온 주 단위 S&OP 프로세스가 안정화되고 있다고 판단, 올 하반기에는 주 2회 계획 체제로 전환을 추진하는 등 시장 대응력을 한층 더 높이겠다는 의지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