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IT조직의 역할 변화 요구
글로벌 IT통합을 추진할 경우 IT부문의 국가간 경계가 사라지고 관련 정보시스템들의 통합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기능 위주로 시스템들이 통합될 수도 있고, 법·규제별, 권역별 등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통합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지역별 IT조직은 해당 지역의 정보시스템의 개발과 유지보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부여된 기능을 수행하는 식으로 역할과 책임이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의 IT부문과 매트릭스 방식으로 협업하거나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특히 모든 IT 투자와 개발이 글로벌 최고정보책임자(CIO)의 권한 하에 이뤄지면서 각 나라별 IT책임자의 역할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로컬 IT 부문의 인력 감축도 일어나는 등 국가별 IT 부문이 겪는 역할 변화는 매우 크다.
2007년 말부터 ‘OPIO(One Philips IT Organization)’ 정책에 따라 글로벌 거버넌스 통합과 이에 따른 IT 통합에 한창인 필립스전자의 경우 글로벌 CIO가 관리하는 IT 조직을 애플리케이션그룹, 인프라 등 영역별로 통합하고 이를 별도 법인화해 올해 6월부터 본격 운영에 돌입했다.
김경석 필립스전자 상무는 “향후 국내 IT 조직은 독자적 개발 권한은 최소한으로 제한되며 글로벌로 통합된 IT 부문과의 채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일부 업무의 경우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권역까지 담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각 지사의 IT 정책은 네덜란드에 소재한 글로벌 본사 CIO 권한으로 귀속됐다.
로컬 IT 부문은 국가별 시스템의 IT 개발 및 운영을 전임하던 역할에서 프로세스 혁신 주체로서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병주 유니레버코리아 이사는 “글로벌 시스템 통합 후 한국의 IT 부문은 시스템 개발과 유지보수 같은 전통적인 IT 역할이 아닌 프로세스 변화를 지원하기 위한 IT 전략 컨설턴트의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며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밀착 이해하고 이를 IT와 연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들의 IT 통합이 가속화됨에 따라 국가별 IT 애플리케이션이 표준화돼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한 곳에서 개발되거나 통째 아웃소싱 되는 추세는 보다 확대될 전망이다. 김경석 상무는 “통합된 IT법인의 독립적 운영은 IT부문이 아웃소싱화 되고 있는 중간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IT 자회사가 다른 IT서비스 기업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핵심 정보전략과 기획인력만을 남겨둔 채 IT개발과 유지보수 등 지원 영역은 시장의 논리에 맡겨질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각 국별 IT 부문의 자율성과 IT 아웃소싱은 극히 제한되게 되며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아웃소싱이 진행될 경우에는 전세계 IT아웃소싱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IT 인력이 해외에서 국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는 점은 긍정적 변화다. 실제 IBM, 필립스 등의 경우 글로벌 IT 통합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국내 IT인력들이 여러 나라의 지사로 파견돼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IT인력들의 외국어 능력 향상도 중요한 과제도 대두되고 있다. 우수한 IT 인재들이 언어상의 문제로 해외 파견이 좌절되는 경우가 적지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별 IT조직이 아닌 매트릭스 형태로 타 국가의 시스템도 지원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외국어 의사소통에 대한 요구는 크게 높아질 추세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