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장에 ‘디지털 한류’ 바람이 거세다.
삼성전자는 TV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소니를 밀어내고 일등의 자리에 올랐으며, LG전자는 에어컨 시장에서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다. 휴대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노키아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18일 베트남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년 사이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기업들을 제치고 베트남 디지털가전과 휴대폰 시장에서 급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본·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서 방어경영으로 돌아선 데 반해, 국내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영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또 엔고의 영향으로 국내 업체들이 일본 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TV 시장에서 디지털 한류 바람이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LCD TV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베트남 시장에서 30년 소니 TV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지난 2006년 소니를 제친 삼성은 지난해부터 32인치 LCD TV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차이를 두 배 가까이 벌리고 있다.
베트남 세관 및 현지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TV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니가 15∼20%를 차지하고 있으며, LG전자가 15% 내외로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즉 국내 업체가 베트남 TV 시장의 60% 가까이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LG전자는 에어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통돌이 세탁기 등 백색가전 부문에서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휴대폰 시장에서는 노키아가 50% 점유율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2위인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부터 격차를 빠르게 줄여가고 있다. 특히 고급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성장이 눈에 띄자 노키아가 당황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초 하노이 인근에 휴대폰 공장을 설립하고, 베트남 시장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베트남 시장에서의 ‘디지털 한류’는 현지 유통업체들의 디스플레이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전자유통점은 가장 좋은 자리는 조상신을 모신 사당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다음이 수요가 많은 CRT TV 위주로 전시돼 있었다. LCD TV는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자리잡기 일쑤였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을 강조한 LED TV, LCD TV 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베트남 매장들은 최첨단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박제형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작은 실수로도 시장 내 위치가 금세 뒤집어진다”면서 “지금처럼 국내 업체들이 힘이 있을 때 현지 유통업체들과 신로를 쌓고, 역량을 축적해야 향후 몇년 동안 경쟁우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치민(베트남)=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