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사의 IT는 산소와 같은 존재다. IT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질식하게 된다.”
현대증권의 최고정보책임자(CIO)인 박선무 상무는 증권IT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명하며 IT를 증권사의 필수 성장엔진으로 꼽았다. 박 상무는 지난 2월 시행된 자본시장법이 증권IT의 역할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말한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적시에 출시하고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IT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금융권이라 하더라도 증권IT는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증권업은 은행과 보험업에 비해 고객 자산 등 규모 면에서 턱없이 작지만 IT 시스템의 고객 민감도와 시스템 사고에 따른 피해는 매우 크다는 것이다.
박 상무는 “많은 사람들이 ‘IT는 다 똑같은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업종별로 확연히 차이가 있고 금융산업 내에서도 업무 성격에 따라 시스템이 다르다”면서 “업종별 특성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특화된 전문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현대증권의 IT를 담당해온 박 상무는 증권IT에 애정이 남다르다. 박 상무는 현대증권 전산실이 생길 때부터 몸을 담아왔으며 현대증권이 지금까지 수행한 핵심 IT 프로젝트에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박 상무의 경력이 이를 잘 보여준다. 1999년 원장이관 프로젝트의 프로젝트매니저(PM)를 맡았고 전사데이터웨어하우스(EDW) 시스템을 개발할 때도 PM 임무를 수행했다. 2002년 온라인 트레이딩시스템 개발과 최근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까지 현대증권의 굵직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박 상무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1월 CIO로 임명됐다.
박 상무가 CIO를 맡은 시점은 현대증권이 차세대시스템의 분석과 설계작업을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한마디로 전쟁을 앞두고 새 사령관에 취임한 것이다. 차세대 프로젝트라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면서 박 상무는 한국거래소(KRX)의 차세대시스템 오픈 시점에 자사 차세대시스템도 동시에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의 두둑한 배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박 상무의 이런 목표에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로 KRX 측의 차세대시스템 가동 연기로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대증권은 올 3월 23일 KRX와 함께 차세대시스템을 동시에 개통한 유일한 증권사로 기록됐다. 차세대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통하면서 박 상무는 무모한 도전을 위대한 도전으로 만든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박 상무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KRX의 차세대시스템과 오픈 일정을 같이 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을 정도로 리스크가 컸다”면서 “하지만 그만큼 시너지효과가 크기 때문에 승부수를 던졌다”고 말했다.
피를 말리는 작업이 끝나고 나서도 그에게는 여유가 없다. 차세대 프로젝트에 이어 10년만에 전산실의 전기 용량과 면적을 증설하는 프로젝트가 이어졌고 현재도 FX마진거래시스템과 대차거래 서비스 개발, 금리통화선물 등의 선물업 관련 개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내년 초에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 시스템 구축도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IT거버넌스 체계 강화=최근 박 상무는 차세대 프로젝트 등을 통해 개방형 시스템으로 무장한 IT인프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IT 인프라가 비즈니스를 제대로 지원하는 것이 곧 차세대 프로젝트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지금도 새로 갖춘 IT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신규 서비스와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개발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박 상무의 불만이다.
이에 따라 박 상무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 몇 년 전부터 고려해왔던 IT거버넌스 체계를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IT 자원이 현업부서뿐 아니라 타 금융권, 대외 유관기관 등 점차 IT조직 외부로 저변이 넓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 요구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IT거버넌스 체계의 확립이 시급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현대증권은 앞서 IT거버넌스 관련 컨설팅은 진행했고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IT거버넌스 체계를 조금씩 정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ITMS(IT Management System)를 활용해 시스템점검 현황과 서버 가동 현황, 네트워크 현황 등 IT 운용 현황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모든 IT 프로젝트는 엔터프라이즈프로젝트관리(EPM) 시스템으로 통제하고 있다. 또 △프로그램 소스와 데이터베이스는 형상관리시스템(HCMS)의 통제 하에서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으며 △RM(Relation Manager)조직에서 신규 업무의 IT 프로젝트를 발의하도록 했다.
박 상무는 “PaaS(Platform as a Service), SaaS(Software as a Service) 등을 근간으로 하는 트렌드가 전 산업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IT거버넌스 중요성을 최근 들어 더 실감하고 있다”며 “올 연말부터 강화된 IT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IT전문가’ 양성에 집중=박 상무는 앞으로 IT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현업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일환으로 박 상무는 IT부서 직원들을 현업 부서로 전진 배치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파생상품 관련 시스템 개발을 직접 파생상품본부에서 함께 하는 식이다.
소속감을 높여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면서 해당 본부의 업무 전문성을 근간으로 서비스를 차별화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형 조직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박 상무의 복안이다.
박 상무는 “비즈니스 부문의 여러 부서에 IT직원들이 소속돼 금융상품의 연구와 설계, 시뮬레이션, 금융공학 기법의 구현 등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직원들의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정하진 않았지만 향후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전략은 IT거버넌스를 강화하는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IT본부에는 기획과 시스템 운용 관련 부서만 남고 IT거버넌스를 활용해 중앙에서 통제 관리한다는 전략이다.
박 상무는 평소 자사 IT직원들에게 ‘IT전문가’가 아닌 ‘금융IT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충고한다. 프로그램언어, DB 튜닝 등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금융업무 관련 교육부문에 무게중심을 더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현대증권의 IT직원들 중 93%가 하나 이상의 금융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박 상무 역시 2개 이상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박상무는 “IT 역량과 증권업무의 전문성을 두루 갖춘 하이브리드형 인재를 키우는 것이 CIO 재임 중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박선무 상무는
1986년 중앙대학교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ENG(현 포스데이타), STM(현 LG CNS)을 거쳐 1989년부터 현대증권에 몸담았다. 이후 정보서비스팀장, 사이버시스템팀장, IT기획팀장을 거쳐 2008년 1월부터 현대증권의 CIO를 맡고 있다. CIO로 임명되기 전 해인 2007년에는 미국 보스턴대학 포켓CIO MBA과정과 와튼스쿨 CIO과정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