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인터넷 쇼핑몰`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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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잿더미 속에 움트는 이라크의 인터넷쇼핑몰 산업- ‘이라크의 e베이’ 하레즈닷컴(Harej.com)>

 수크 알 하레즈는 이라크의 소문난 재래 시장이었다. 아랍어로 수크는 ‘시장’, 하레즈는 ‘소란’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난장(亂場)’이다. 상인과 손님의 구분이 없이 내다팔 물건이 있으면 누구나 자리를 펴고 장사를 했다. 가구나 전자제품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중고 물품이 하레즈 시장에 나와 새 주인을 찾아갔다. 수도 바그다드뿐 아니라 이라크 전역의 도시에는 어디나 하레즈 시장이 들어섰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하레즈 시장을 바꿔놓았다. 추억이 깃든 중고품 대신 군수품이 시장에서 암거래됐고 대중이 군집한 장소를 겨냥하는 자살폭탄테러의 위협이 시민들의 발길을 돌렸다. 사고파는 이들의 흥정으로 떠들썩했던 이라크의 명물 하레즈 시장은 옛 추억이 돼갔다.

 ◇재래시장의 부활, ‘하레즈닷컴’=이 하레즈 시장이 최근 인터넷에 등장해 새롭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다름 아닌 이라크 역사상 최초의 인터넷쇼핑몰로 기록될 ‘하레즈닷컴(www.harej.com)’의 등장이다.

 마흐디 알 아즈와디와 팔레 알 바하들리라는 두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개설한 하레즈닷컴은 미국의 e베이처럼 판매자가 물품을 사이트에 올리면 소비자가 희망가격을 제시해 낙찰을 받는 경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기단계여서 인터넷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중계하는 서비스까지만 제한적으로 제공할 뿐, 이후 실제로 물품을 주고받는 거래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진다.

 하레즈닷컴은 휴대폰, 컴퓨터, 시계, 책, 자동차에서부터 집이나 심지어 일자리에 이르기까지 제법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고 있다. 단연 인기를 끄는 품목은 자동차. 2008년식 메르세데스 C300과 도요타 캠리, BMW X5, GMC 유콘 XL 등 16대가 매물로 올라와 있다. 이 밖에도 노키아 휴대폰, 소니 PS3, HP 중고 노트북PC 등 전자제품과 6만5000달러 상당의 방 4개짜리 주택도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경매사이트답게 모든 상품을 취급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예외는 있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위배되는 술이나 돼지고기, 장물, 성인용품 등은 매매할 수 없다. 총기 등 무기류도 금지품목이다. 만약 이를 어기면 해당 판매자의 신원이 회원들에게 공개돼 차후 거래에 제한을 받는다.

 ◇이라크의 인터넷쇼핑몰, 그 잠재력과 한계=하레즈닷컴은 세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서구 문물을 상대적으로 더디게 받아들여온 이라크인에게 생소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7월 말 현재까지 729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느리지만 꾸준히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거래 실적은 높지 않지만 이라크 내에서뿐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이라크 교포 사회에서도 입소문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2, 제3의 하레즈닷컴이 출현하는 인터넷쇼핑몰 붐으로는 이어지고 있지 않다.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 오랫동안 중앙집중식 사회경제시스템에 익숙했던 이라크 사회에서 서구 자본주의 태생의 인터넷 쇼핑몰 산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우선 아직까지 브로드밴드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아 속도나 품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터넷 서비스 수준과 적은 가입자 규모가 걸림돌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이라크의 인터넷 인구는 2008년 말 기준 27만5000명으로 30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라크 전체 인구의 1%도 안 된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비즈니스가 성립되려면 인터넷이 국민 생활 속에 밀접하게 스며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넷 보급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통신 기반 설비 확충이나 브로드밴드 인터넷으로의 업그레이드 등 인프라 구축이 병행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낮은 신용카드 보급률, 서구식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용결제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점, 미국 주도의 UN 경제 제재 등으로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탈피하지 못한 이라크 경제의 특수성,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우편배송체계도 인터넷쇼핑몰 산업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신용카드시스템은 지난 2007년 처음 이라크에 도입돼 지금까지 10만명가량이 이라크 현지 은행들로부터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그러나 이라크 내에 신용카드 가맹점이 거의 없고 전시상황에서 대다수 유통매장이나 소규모 상점들이 현금을 선호하다 보니 카드 사용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어서 인터넷쇼핑몰에서 신용카드 전자 결제서비스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후 경제복구와 이라크 인터넷비즈니스 성공 잣대=하레즈닷컴의 운영자 마흐디 알 아즈와디는 “이라크에서는 인터넷이 아주 새로운 비즈니스 수단이고 온라인 마케팅이나 인터넷 광고, 전자결제 등의 인프라가 여전히 취약한 상황에서 하레즈닷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e베이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지향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이라크에서도 인터넷쇼핑몰 산업이 뿌리를 내리는 데 우리가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내다 팔 물건이 있으면 누구나 오는 곳. 상인과 손님의 경계가 없는 곳. 하레즈닷컴은 이라크의 재래시장 하레즈를 사랑하는 이라크인에게는 옛 영화를 기리는 오마주일런지도 모른다. 동시에 하레즈를 인터넷에서 되살린다는 것은 전후 이라크 경제의 재건을 위해 서구식 자본주의, 더 나아가 21세기 인터넷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단편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략의 역사는 외래문물 유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 이라크인의 반미정서는 뿌리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식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이라크인에게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경제가 그 잿더미를 딛고 번영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이라크의 e베이’ 하레즈닷컴의 실험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조윤아 IT칼럼니스트=두바이(아랍에미리트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