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사절단이 21일 오후 3시께 고려항공소속 76석짜리 소형 항공기에 몸을 싣고 남한 땅을 밟았다. 김포공항 국제선 여객터미널 앞 계류장에서 트랩을 사용, 항공기에서 내린 조문단원들은 홍양호 통일부 차관과 정세현 김대중 평화센터 부이사장 등의 영접을 받은 뒤 준비된 에쿠스 리무진과 다이너스티 차량에 나눠 탄 채 빈소가 마련된 국회로 향했다.
= 김정일 조화 실은 화물 차량이 조문단 선도(?) = 0..북측 조문단이 탑승한 승용차는 선도용 차량과 승합차, 경호 담당자들이 탑승한 미니버스, 화물탑차 등이 호위하는 가운데 국회로 이동했다. 이동 과정에서 화물차량이 북측 조문단원들이 탄 승용차에 앞서 달려 눈길을 모았는데 이는 화물차 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조화가 실려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김 위원장의 조화는 항공기 왼쪽 뒷편 화물칸에 실려 서울로 날아왔다.
상이군경회 등 보수단체 회원 100명이 공항 국제선 터미널 옆에서 조문단의 방남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큰 마찰은 없었다. 한편 북한 조문단이 타고온 항공기는 ‘투폴레프(TU) 134’로 파악됐다. 이 항공기는 러시아 공군장교인 투폴레프가 만든 기종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조문단원 6명과 승무원 12명을 태우고 온 이 항공기는 곧바로 평양으로 되돌아갔다가 22일 오후 1시 다시 김포공항에 와서 조문단을 싣고 귀환할 예정이다.
= 김정일의 2색 조화 = 0..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북측 사절단은 남측이 마련한 승용차 편을 이용해 오후 3시53분께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연단으로부터 30~4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오후 4시께 북측 조문단이 차량에서 내리자 조문을 위해 기다리던 일부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에 분향소 사회자는 “북측 특사 조의단이 지금 도착했다. 조문단은 6명으로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단장으로 6명”이라고 조문단 명단을 읽어내려간 뒤 “숙연하게 북측 조의단을 맞이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김 비서를 비롯한 북측 인사들은 직접 북한에서 가져온 조화를 들고 김 전 대통령 영정 바로 우측에 세워놓고 분향을 하며 김 전 대통령 영정에 고개를 숙였다.
2m정도 높이의 조화의 흰색 리본에는 검은 글씨로 좌측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여’라고 씌어져 있었으며, 우측 리본에는 ‘김정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화는 주로 흰색 백합 위주로 만들어졌으며 아랫부분에는 흰색 국화가, 정중앙에는 붉은색 꽃이 장식돼 있었다.
= 김기남 “정의와 량심을 지켰다” 방명록 남겨 = 0.. 김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 등 북한 조문단은 분향을 한 뒤 5~6초가량 고개를 숙여 묵념을 했다. 묵념을 할 때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황희철 법무부 차관, 박지원 의원,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이 함께 했다. 이어 유족석으로 향한 북한 조문단은 박지원 의원의 안내로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홍걸씨 등 유족은 물론 정세균 민주당 대표, 정동영 의원 등 민주당 의원, 한나라당 박진 의원, 한명숙 전 총리 등 정치권 인사 수십명과 악수를 했다.
정 대표는 김 비서와 악수하며 “김 대통령께서는 돌아가시면서도 남북대화 재개를 희망하셨다”고 하자 김 비서는 “예”라고만 답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서거시 북측이 조선중앙통신으로 조의를 표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했지만 김 비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없다.
이어 김 비서는 준비된 방명록에 ‘정의와 량심을 지켜 민족 앞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특사조의방문단 김기남’이라고 썼다.
= 김형오 “남북관계 돌파구 기대”..김기남 “북남관계 먼길돼선 안돼”= 0.. 조문을 마친 뒤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김 비서에게 “김형오 국회의장이 차 한잔하시자고 한다”며 면담을 제안했고 이에 김 비서는 “그러자”고 화답해 북한 조문단은 곧바로 국회의장실로 향해 김 의장과 10분가량 면담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이번 기회가 남북관계 돌파구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좋은 타결을 지은 것도 남북관계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이었고, 내려오지 못한 연안호 어부들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이 좋은 지시를 했다고 들었는데 돌아오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동석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지난 10년의 상황들이 전진되어야지 후퇴가 있어선 안된다”며 “이번을 계기로 남북대화 물꼬가 터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 비서는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 저희도 노력하겠다” “다 먼길이라 하는데 먼길이 돼선 안된다”고 화답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2005년 8월 ‘8.15 민족대축전’ 행사 참석차 남한을 방문해 국회를 찾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4년만에 의사당에서 환대를 받았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가 괜찮았다”고 말해 현재 좋지않은 남북관계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면담에는 김 의장과 정 대표를 비롯해 문희상 국회부의장, 민주당 박지원 추매애 이미경 의원, 한나라당 박진 의원, 홍양호 통일부 차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이 동석했으며 이들은 면담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 국회 42분간 머물러 = 0..북측 조문단이 국회에 머무는 동안 조문단 주변으로 경찰을 비롯한 경호원들이 둘러싸 이들의 신변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고 일부 시민들은 이들의 모습을 담으려 사진을 찍으려다 제지를 당하는 등 주변에서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북측 조문단이 지나갈 때 박수와 함께 ’통일’을 외치기도 했으며 한 시민은 ‘반갑습니다. 어서오셔요’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기도 했다. 면담을 마친 북측 일행은 오후 4시35분께 준비된 차량에 탑승, 국회를 떠나 미망인인 이희호 여사를 만나기 위해 동교동 김대중 평화센터로 향했다.
국회를 떠나기 앞서 김 비서는 남한 당국을 만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천천히 얘기하자”며 말을 삼갔고 서울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웃는 얼굴로 “좋습니다”라고만 했다.
북 조문단이 이날 조문과 약식 환담 등으로 국회에 머문 시간은 총 42분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