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인천시장 특별인터뷰] 안상수 인천시장은‥

 안 시장을 보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딸 수 없는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돌진하던’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그가 처음 송도 비전을 이야기할 때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돈키호테라 칭했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무모하다고. 하지만 지금 그 무모함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갯벌이 송도였다. 이곳에 하나둘 마천루가 들어서고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명문 공원도 있다. ‘갯벌’이 ‘갯펄(Get Pearl)’이 돼가고 있다.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다.

 안 시장은 1946년 충남 태안 바닷가 마을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작은 어선을 소유한 선주 집안이라 어렵지 않았지만 유복한 편도 아니었다. 안 시장이 인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 두 살 때다. 당시 인천에 살던 이모에게 맡겨지면서 인천에 발을 들여놓았다.

 재수, 삼수 끝에 동기보다 늦은 1972년 서울대 사범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지금은 없어진 제세산업을 거쳐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에 근무하면서 한때 ‘금융투자의 귀재’라는 별명도 얻기도 했다. 선물 분야 책을 두 권이나 냈을 정도로 해박하다. 그는 정보기술(IT), 특히 통신 분야와도 인연이 깊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3년간 동양그룹 통신사업부 본부장을 맡아 동양의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지휘했다. 당시 미국의 한 이통사업자와 합작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데이콤 이사 경력도 갖고 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의 전문경제인 영입케이스로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 1999년 계양·강화갑(현 계양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돼 의정활동을 시작했지만 1년 후에 치러진 16대 선거에서는 뜻밖에 낙선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2002년 인천시장 선거에 도전해 결국 승리했다. 그는 아픈 아내를 5년간 극진히 간호한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장보고를 존경한다. 바다와 항구를 배경으로 동북아 물류 허브, 무역의 중심이 됐던 해상왕 장보고처럼 인천을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