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44년 전에 예언된 한글의 해외 진출

[SF 세상읽기] 44년 전에 예언된 한글의 해외 진출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지아지아족이 자기들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고 한다.

 우리말이 그대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표기하는 자모로 한글을 쓴다는 얘기다.

 이와 비슷한 시도는 예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태국의 소수민족인 라후족이다. 그들은 먼 옛날 당나라에 붙잡혔다가 오지로 추방된 고구려 유민들의 후예라는 설이 있는데, 아무튼 라후족의 언어에는 우리말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우리나라 언어학자들이 그곳에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보급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지아지아족은 이미 한글로 쓰인 교과서까지 만들어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물론 우리가 보면 읽을 수는 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그 종족의 청년이 한국으로 유학 와서 공부를 했을 만큼 체계적으로 준비한 결과다.

 이 소식을 접하고 떠오른 것은 오래 전에 발표된 한국의 SF소설 한 편이었다.

 1965년에 처음 발표된 문윤성의 ‘완전사회’. 주인공 청년이 인공 동면에 들었다가 22세기 중반에 깨어나는데, 놀랍게도 그 미래 사회의 만국 공통어가 한글을 문자로 쓰고 있더라는 설정이다.

 사실 십 수년 전에 처음으로 이 소설을 접했을 때에는 민족주의가 좀 지나쳤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글이 우수하기는 하지만 미래 사회에서 세계어 문자로 쓰인다는 설정은 너무 노골적인 쇼비니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선 현재에 한글이 지아지아족의 문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무래도 내 상상력이 빈곤했거나 혹은 자기 검열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적 표음문자라는 한글의 특성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의 모국어라는 점 때문에 역차별을 가한 셈이다.

 완전사회는 그 밖에도 파격적인 미래 전망을 담고 있다. 여성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거나, 연극이라는 예술이 완전히 쇠락해 지구상에 겨우 한 극단만 남았다는 등등.

 얼핏 보기에는 황당무계해 보이지만, 이를테면 여성들만이 남아있는 세상에서는 사회적 성 차별 문제가 소멸되는 것으로 사고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문사회학적으로 흥미로운 가정들이 교직하고 있다.

 사실 완전사회는 한국 SF문학사에서 해방 이후 최초의 성인용 장편 과학소설일 가능성이 높다. 해방이 되고도 20년이나 지나서임을 감안하면 그만큼 우리나라 SF문학의 명맥이 빈약함을 방증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완전사회와 같은 신선한 전망과 통찰을 보여 준 작품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문화와 정보의 국경이 갈수록 허물어지는 요즘 세상이라면, 지난 세기에 이런 저런 이유로 묻어두었던 SF들도 새롭게 들춰내 객관적으로 고찰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SF의 상상력은 사실 과학기술보다는 사회학적 함의에 더 방점에 찍히는 것이기에.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cosmo@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