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를 치는 골퍼의 대부분이 벙커샷을 매우 어려워한다. 벙커에 빠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플레이한다. 알고 보면 벙커샷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벙커에서 고생한 나쁜 기억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질 뿐이다. 벙커샷을 치는 요령은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골프 교습서에 보면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온다. 목표의 왼쪽을 보고 오픈 스탠스로 서야 한다. 테이크 어웨이를 할 때는 얼리 코킹을 해야 한다. 다운 스윙의 궤도는 발끝을 잇는 선을 따라 아웃사이드 인으로 해야 한다. 샌드웨지의 페이스는 하늘을 보도록 눕혀야 한다. 체중은 양쪽 발에 균등히 둬야 한다. 또 다른 교습서를 보면 스탠스는 오픈으로 서되, 스윙 궤도는 핀을 향해 똑바로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체중도 왼발에 둬야 한다고 쓰여 있는 교습서도 있다. 30m짜리 긴 벙커샷을 하려면 샌드웨지의 페이스를 열지 말고 스퀘어하게 어드레스해야 한다고도 써 있다. 헷갈리게 만드는 설명들이 교습서에, 골프 잡지에, 온 세상에 가득한데 내 볼만은 벙커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벙커에서 확실히 탈출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볼 뒤의 모래를 세게 때려서 모래와 함께 볼이 벙커 밖으로 튀어나가게 한다.” 골프 교습서나 골프 잡지에 나오는 설명들은 벙커 턱에 핀이 바짝 붙어 있는 가까운 벙커 샷, 30m가 넘는 긴 벙커샷을 자유자재로 칠 수 있는 싱글 골퍼나 프로 골퍼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다. 페이스를 눕혀서 샌드웨지의 뒷면(플랜지)으로 모래를 얇게 떠낸다는 설명은 필 미켈슨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다. 90대 중반 골퍼라면 다 잊는 게 좋다. 특히 거리를 맞추려는 시도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100% 확률로 벙커에서 나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90대 중반 골퍼가 벙커에서 확실히 탈출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욕심을 버리고 일단 그린에 올리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어드레스도 일반 아이언 샷처럼 핀을 향해 똑바로 어드레스를 한다. 그리고는 샌드웨지를 들고 보통의 아이언 샷과 똑같이 볼 뒤쪽 2㎝ 지점을 겨냥해서 조금 부드럽게 때리면 된다. 벙커 턱이 높거나 거리가 가깝거나 멀거나 따지지 말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그냥 때린다. 이렇게 하면서 실력이 조금씩 쌓이면 거리도 맞추고 탄도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구력과 함께 쌓여간다.
80대 초반을 치는 골퍼도 젖은 모래에서는 사고를 낼 수밖에 없다. 샌드웨지의 페이스를 열고 얇게 떠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상 어드레스를 하고, 샌드웨지 로프트 각도인 56도를 이용해서 그냥 때렸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아는 것이 병이라서 쉽게 탈출하지 못한다. 독자 여러분도 벙커에 볼이 빠지면 욕심을 버리고 보통 아이언 샷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