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첨단 소재인 폴리이미드(PI) 필름을 전 세계 세 번째로 양산하는 데 성공한 코오롱. 당시 이웅렬 회장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아가 “여기에서 파생시킬 수 있는 세계 최고 제품을 다시 한번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코오롱 중앙기술원과 전자재료연구소는 미래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첨단 탄소나노튜브(CNT) 소재에 눈을 돌린다. 하지만 원천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막막하기만 했던 것이 사실. 코오롱 연구원들은 항공 기술의 총아인 미국 나사를 접촉했다. 우주의 극한 조건에 견딜 수 있도록 첨단 항공 소재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데다 비영리 기관인만큼 기술 이전에 따른 부담도 덜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주효했다. 코오롱은 마침내 올해 ‘CNT 복합체 제조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성공, 그 공로를 인정받아 나사가 수여하는 최고 명예상인 ‘윗컴 앤 홀로웨이 2009 기술이전상(하드웨어 부문)’을 수상했다. 당장 돈 벌지는 못하지만 CNT 복합체 제조 기술은 미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태양전지·스마트윈도 등의 핵심 소재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녔다. 강충석 코오롱 전자재료 연구소장은 “핵심 소재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려면 장기간의 연구개발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들게 마련”이라며 “결국 정부나 기업이나 최종 의사 결정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SKC는 지난 2월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인 불소필름과 EVA시트를 동시에 개발 완료하고 수원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불소필름은 미국의 듀폰이 수십년간 독점하고 있고 EVA시트는 일본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제품이었다. SKC가 기존 PET 필름을 포함해 태양전지용 3대 핵심 필름을 모두 양산할 수 있는 세계 첫 번째 기업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SKC는 지난 6월 또 한번 ‘사건’를 기록했다. 일본 도요타의 친환경 하이브리드카인 ‘뉴프리우스’의 핵심 소재로 자사 ‘폴리에틸렌나프탈레이트(PEN)’ 필름이 전격 채택된 것이다. 그동안 하이브리드카의 부품 필름소재는 까다로운 품질을 요구한 탓에 일본 데이진듀폰 정도만이 양산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코오롱이나 SKC의 사례는 국내 업계가 첨단 화학소재 분야에서 ‘극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공통된 출발점은 CEO의 강력한 의지였다. 특히 지난해 이후 이어진 엔화강세 현상으로 국내 소재 업계에는 놓칠 수 없는 기회도 주어졌다. 최근 광학필름이나 냉음극형광램프(CCFL) 등 디스플레이 소재의 국내 자급률이 높아진 것이 단적인 예다. 한준희 SKC 첨단기술중앙연구소 실장은 “미래 시장을 겨냥한 첨단 소재 기술을 갖기 위해서는 세계 일류 회사들에 도전하는 길밖에 없다”면서 “결국 산업의 트렌드를 남들보다 앞서 파악하고 과감하게 나서겠다는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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