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발사가 아쉽게 실패했다. 우주개발 사업에서 실패는 어쩌면 당연하다. 그 대신에 우리가 배울 것을 얻고 익혀야 한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방향을 잡고 기술 개발을 할 때 실패 속에 얻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진해 온 우주개발 계획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다섯 차례에 걸쳐 점검한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늦었다.
시작 시기, 투자예산, 인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20년도 안 되는 짧은 우주개발 역사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저력으로 어느새 인공위성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근접할 만큼 발전했다. 하지만 중장기 연구가 쉽지 않은 풍토로 인해 발사체 기술 등은 아직 세계 수준에 한참 뒤처진다. 단기 성과 위주의 사업에 너무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주개발을 본격 시작한 것은 실험용 과학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한 1992년이다. 옛 소련이 1957년 첫 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지 35년 뒤의 일이다. 우주 선진국들이 유인우주인, 달착륙, 화성착륙, 우주정거장, 태양계 밖 행성탐사 등을 수행하던 시기다. 과학기술과 경제 수준보다도 남북 대치상황에서 감히 우주과학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나설 수 없었다.
우리나라를 위성 보유국으로 등록시킨 우리별 1호를 KAIST는 영국 서리(Surrey) 대학으로부터 거의 모든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했다. 1993년 우리별 2호, 1999년 우리별 3호에 이어 2003년 과학기술위성 1호까지 개발했다. 민간분야에서도 1995년 무궁화위성 1호를 발사한 이후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 2호 등을 발사하며 위성기술을 쌓았다. 위성 제작기술 자립도는 세계 최고기술에 비해 70∼90%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위성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정부는 우주발사체와 우주센터 건립도 추진했다. 뒤늦게 뛰어든 우주개발 사업의 가속도를 내기 위해 단기성과 위주의 사업 추진전략을 택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우주인 배출 사업과 나로호 발사다. 두 사업 모두 우주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 발사체 시스템 조립 등 기술 체득의 성과가 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사업과 조금 거리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단기 성과를 위해 목표까지 수정한다는 점이다. 연구인력이나 자원 등을 차근히 준비하지 않고 정치적 입장을 고려한 우주 전략을 수립하기 일쑤다. 단적인 예가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1998년 6월) 이후 달라진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이다. 당시 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은 2003년에 최고고도 300㎞ 정도의 액체과학로켓(KSR-Ⅲ)을 발사하고, 2010년 무게 500∼700㎏의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자체 발사체(KSLV-Ⅰ)로 진입시킨다는 목표에 맞췄다. 그러나 대포동 1호 발사 후 KSLV-Ⅰ의 탑재체 무게를 100㎏급으로 줄이는 대신 발사 시기를 2005년으로 앞당겼다. 2010년에 1톤급, 2015년에 1.5톤급 위성을 자력 발사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KSLV-Ⅰ사업예산이 나온 2002년에는 발사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다. 무리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력 개발을 포기하고 러시아와 협력을 택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나로호 발사에도 불구 발사체 기술의 핵심인 액체로켓 기술의 발전이 없다.
유인우주인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소연씨 이후의 유인 우주인 양성 계획이 전무하다. 우리나라 우주 정책의 부재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여주기 식’의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이제는 원천기술 확보와 우주기술 자립능력 발전을 위해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