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전시회는 멀티미디어와 가전 분야의 ‘트렌드 세터’로 역할을 해 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전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디자인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으며 3차원(3D) TV 제품이 대거 쏟아져 나와 내년이 ‘3D 시대의 분기점’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또 디스플레이가 고화질·3D로 넘어가면서 오디오(AV) 분야도 3D 사운드 등 화질에 걸맞는 음질 기술이 선보였다. 가전 분야에서 에너지 소비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이 나오는 등 ‘그린’이 시장 성패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IFA 2009’로 보는 멀티미디어·가전(CE) 분야 5대 흐름을 짚어 본다.
◇평판TV, 디자인 경쟁 시대 돌입=불과 몇 년 전 평판TV는 대화면 경쟁이었다. 누가 더 큰 화면을 개발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어 화면 크기는 슬림화 경쟁으로 넘어 갔다. 주요 브랜드는 TV 두께를 슬림화하는 데 앞다퉈 나섰다. 이 추세는 올해도 이어져 올 IFA에서 확인한 큰 흐름은 본격적인 디자인 경쟁 체제 돌입이다. 대화면에서 두께, 이어 슬림화를 포괄하는 디자인 경쟁으로 TV 흐름이 바뀐 것. 이미 ‘보르도TV’를 내놓고 디자인 투자에 나선 삼성은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입스 베아 등을 내세워 삼성 LED TV를 활용한 작품을 전시하는 등 디자인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LG전자도 TV화면과 테두리를 없앤 파격적인 디자인의 ‘보더리스TV’를 내놨다. 강신익 LG전자 사장은 “TV 기술력은 평준화한 상황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2010년, 3D 시대 개막=디스플레이 부문에서 3D 제품이 봇물을 이뤘다. 특히 한국과 함께 세계 TV 시장을 주도하는 일본 업체는 예외없이 3D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현지 시장분석가는 디지털TV를 기점으로 한국에 주도권을 놓친 일본 전자업체가 3D를 중심으로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며 ‘일본 브랜드의 역습’이라고 분석했다. 아직은 패널 수급과 가격이라는 걸림돌이 있지만 주요 TV 브랜드가 3D 시장 활성화에 나서면서 2010년부터 다양한 제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 소니는 LCD TV, 파나소닉은 PDP TV 기반의 3D TV 신제품을 대거 내놨다. 소니 하워드 스트링어 회장은 “2010년을 3D TV 대중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새로운 TV 인터페이스의 등장=전시회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디스플레이 분야 큰 흐름은 ‘보는 TV’에서 ‘사용하는 TV’로 TV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와 맞물리면서 TV에도 컨버전스형 제품이 나왔으며 이에 따라 단순 리모컨 위주의 인터페이스에서 다양한 실감형 인터페이스 기술이 쏟아졌다. 삼성은 TV와 리모컨 개념을 한 단계 진화한 ‘LED TV 커플’을 내놨다. 이 제품은 터치 방식 7인치 디스플레이를 함께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인터넷TV에서 더 나아가 와이파이 무선 기술을 활용해 리모컨으로 쓸 수 있다. LG전자도 ‘자이로 센서’를 탑재해 리모컨을 잡은 손의 떨림과 회전을 인식해 TV 기능을 간편히 사용할 수 있는 ‘매직 모션 리모컨을 공개했다.
◇진정한 AV 시대의 개막=화질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게 바로 사운드다. 더욱 선명한 화면을 구현해 주는 쪽으로 디스플레이가 진화하면서 오디오·비디오(AV) 분야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사실 그동안 오디오 기술은 화질 진화에 비해 다소 뒤떨어졌다. 이번 전시회에 파나소닉은 ‘600㎐’ 제품을 내놨다. 초당 600장의 화면을 전송해 주는 셈이다. 2007년 100㎐에 이어 가장 최근에 나온 제품이 480㎐임을 감안하면 그만큼 촘촘하고 세세한 화면 표현이 가능해진 것. 고화질을 지원하는 오디오와 홈시어터 첨단 기술이 대거 선보였다. 특히 필립스는 안방 극장 수준의 홈시어터 환경을 선보여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가전 ‘그린’만이 생존 키워드=멀티미디어와 함께 IFA의 큰 축으로 부상한 생활가전 분야는 ‘그린’이 역시 화두였다. 에너지와 물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이 메인 흐름으로 떠올랐다. 지멘스·월풀·일렉트로룩스 등 세계적인 가전 업체는 유럽 기준으로 최고 에너지 효율 등급을 획득한 제품을 ‘간판주자’로 내놨다. 삼성과 LG전자 등 국내업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가전 부스에서는 ‘에코(Eco) 존’을 별도로 마련했으며 전시관 전면에 친환경 제품이 얼마나 에너지를 절약하는 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데 주력해 가전 제품의 대표 선택 기준으로 친환경이 떠올랐음을 한 눈에 보여 주었다.
독일 베를린=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