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회사이자 국내 최대 반도체·LCD 장비업체인 세메스가 합작 파트너인 일본 다이니폰스크린(DNS)로부터 ‘영업권’ 독립을 본격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독자 기술력과 영업망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와 일본 DNS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다. 특히 지난 수년간 국내외 장비 시장에서 일본 DNS사와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는 점에서 양사의 새로운 관계 정립 구도에 관심이 쏠린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세메스는 김형문 신임 대표가 취임한뒤 합작 파트너이자 기술 제공업체인 일본 DNS사와 영업권 분리를 골자로 관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양측은 기수주 장비를 제외하면 독자적으로 개발, 생산한 장비를 앞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영업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또 세메스는 일본 DNS사의 장비나 그 기술을 도입해 제조자개발생산(ODM)으로 판매하던 방식도 중단키로 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양사가 유지했던 국내외 시장의 영업권 협정도 바꿔, 고객사나 시장 구분 없이 자율적으로 영업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양사가 서로 경쟁하더라도 해외 시장에서는 세메스의 영업에 제한을 두는 것이 원칙이었다.
1992년 삼성전자와 일본 DNS사의 합작 투자 및 기술 도입계약으로 시작된 양사의 제휴 관계가 이처럼 변모하고 있는 데는 무엇보다 세메스의 기술력과 영업력이 크게 향상된 이유가 크다. 특히 세메스가 자체 개발한 습식 식각장비는 DNS도 보유하지 못한 세계적인 수준의 제품이라는 평가다.
DNS 관계자는 “세메스가 독자 기술력을 많이 축적한 만큼 해외 시장에서 영업할때 서로 호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면서 “다만 기술공여 계약을 비롯해 포괄적인 합작 관계는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사의 관계 변화는 이처럼 표면적인 이유보다 각자 독자 생존을 위해 국내외 시장에서 영업을 제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수년간 세메스가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하면서 양측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 세메스가 기술 전수를 통해 개발한 장비를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공장에 공급하거나 여타 반도체·LCD 업체 등에 진출을 시도하면서 DNS를 자극한 것이다. 대만 반도체 업체인 이노테라메모리스에 이어 올 들어서도 벌써 중국 천마·비오이 등과 LCD 장비 대규모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에 맞서 DNS도 습식 식각장비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 어플라이드와 함께 ‘소꾸도’라는 합작사를 만들기도 했다. 세메스 관계자는 “최근 10년간은 이전받은 원천 기술도 없을 뿐더러 지금은 각자의 기술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도 어렵다”면서 “영업권 관련 계약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