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SF 팬들이 꿈꾸는 미래](https://img.etnews.com/photonews/0909/090909043717_1631176229_b.jpg)
팀 앨런, 시고니 위버 등이 출연한 영화 ‘갤럭시 퀘스트(Galaxy Quest)’는 TV 드라마의 배우와 그 팬들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 제목과 같은 드라마 ‘갤럭시 퀘스트’의 배우들은 영화 내용을 진짜로 믿는 외계인의 초대로 우주로 향하고, 드라마와 똑같이 만든 우주선을 타고 사악한 악당과 싸움을 벌인다. 위기 속에서 그들은 드라마 속 상황을 이용해 악당을 물리치고 우주선을 탄 채 지구로 돌아오는데 하필이면 그곳은 ‘갤럭시 퀘스트’의 팬 이벤트(갤럭시 퀘스트 컨벤션)가 열리는 행사장. 난데없이 벽을 뚫고 나타난 우주선에 놀란 팬들은 우주선에서 나오는 배우들을 보고 열광한다.
외계인이건 뭐건 치마만 둘렀다면 밝히는 선장에 엉뚱한 격언을 지껄이는 외계인 학자, 미인 통신사에 흑인 항법사 등이 활약하는 드라마가 인기 작품 ‘스타트렉’의 패러디라는 사실은 그 누가 보아도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이 유쾌한 SF 작품에서 재미있는 점은 외계인만이 아니라 지구의 팬들조차 이 드라마 속의 이야기를 진실이라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계인들은 우주선의 모든 부분을 드라마와 똑같이 만드는가 하면, 무선으로 연락을 받은 팬들이 배우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주선의 상세한 설계도로 그들을 인도하고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결국 오타쿠나 마니아라 불리며 조롱받는 이들이 세상에 도움을 준 이야기라고 할까.
이렇듯 ‘갤럭시 퀘스트’는 SF팬들의 꿈을 멋지게 펼친 즐거운 작품이지만, 여기서 그려지는 SF팬들은 실용성은 무시하고 드라마와 똑같은 우주선을 만드는 외계인처럼 현실을 보지 않고 오직 꿈만 꾸는 존재로 그려진다. 대개 10대 청소년인 그들은 배우와 같은 옷을 입고 수많은 상품을 사들이는가 하면 이벤트를 찾아가 진지한 모습으로 영화 속의 설정을 갖고 논쟁을 벌인다. 심지어는 오바마나 부시가 영화 속의 누굴 닮았는지를 두고 내기를 걸기도 한다.
영화 속의 상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만들어진 세계의 과학을 갖고 논쟁을 벌이는 소년, 소녀의 모습은 ‘건전한’ 어른들에겐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SF는 어디까지나 상상의 세계로 현실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SF를 볼 시간에 단어 하나 더 외우라고 종용해야 할까.
‘갤럭시 퀘스트’의 원형인 ‘스타트렉’ 중 한 장면은 SF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선장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홀로그램을 상대로 포커를 치고 있는데, 그 자리에는 또 한 사람의 물리학자가 있었다. 바로 ‘휠체어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바로 그 사람이…
파킨슨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발표를 계속하는만큼 연구에만 몰두할 것 같은 그 역시 일찍부터 ‘스타트렉’의 팬이었고, 불편한 몸에도 까메오로 출연한 것이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영미권의 학자나 기술자 중에는 ‘스타트렉’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니, 과학자나 기술자 중 ‘스타트렉’의 팬이 아닌 이들을 찾기가 더 힘들다.
꿈과 환상에만 빠져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SF팬’이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갤럭시 퀘스트’ 속의 외계인이나 팬들과 마찬가지로 그 세계를 진실로 믿고 이를 위해 노력했듯, 스타트렉의 가능성을 진실로 믿고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갤럭시 퀘스트’ 속의 팬들이 보잘 것 없는 통신기와 폭죽으로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을 인도했듯 SF를 좋아하는 이들의 상상력은 언젠가 우리의 미래를 즐거운 세상으로 이끌 것이다. 오래전부터 ‘아톰’이나 ‘스타트렉’을 보며 자라난 수많은 SF팬이 로봇이나 우주 개발, 혹은 장난감이나 영화 제작에서 활약했듯이…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 sflib2008@gmail.com